[39] 중앙은행 화폐체제, 근시안적 편법으로 통화가치 교란

비트코인 주화 모형. /사진=뉴시스.
비트코인 주화 모형. /사진=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근세 이전의 화폐는 신용이 필요 없었다. 화폐 자체가 훌륭한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다.

금화, 은화와 같이 그 자체로 귀금속인 돈은 공신에 대한 포상, 거액의 결제 등에 쓰였다.

구리로 만든 동전 역시 돈을 만드는데 들어간 구리자체가 가치를 갖고 있어서 화폐의 액면가에 못지않았다. 중국 한나라 때는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전의 표면을 긁어서 구리를 얻는 행위가 빈발해 나라에서 이를 단속했다.

이런 화폐는 중앙은행이 가치 안정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단점은 들고 다니기가 불편했고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경제규모가 커져 경제에 필요한 만큼의 화폐를 발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의 화폐가 탄생했고 이 종이 한 장에 중앙은행의 신뢰를 부여해 액면 가치를 담고 있다.

화폐 탄생 초기에는 명백한 부채의 성격을 담고 있었다. 중앙은행이 빚을 내는 형식으로 발행함으로써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고 나중에 이걸 들고 오면 액면에 해당하는 가치를 내주는 약속을 했다. 이것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71년 달러의 금태환을 폐지하면서 사라졌다. 이제 화폐는 오로지 중앙은행의 공신력만으로 액면가치를 보장하게 됐다.

마이너스 금리가 금융원리를 교란시키고 있는 오늘날은 중앙은행의 화폐체제에 심각한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비트코인의 사례도 좋은 교훈이 된다.

비트코인이 투기적인 투자대상으로 물의를 빚은 점에 있어서는 당국의 규제와 단속에 분명한 당위성이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이상으로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원래 무엇에 쓰려고 만들었는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몰려들었다.

이런 투기행태의 만연이 없었다면, 비트코인은 그 사람들만의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화폐로 칭송만 받고 있었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2008년 금융위기 때 탄생했다. 이 위기는 세계 중앙은행 체제가 갖고 있는 맹점이 쌓이고 쌓여 터진 것이다. 미국 시장의 금융상품이면 무턱대고 우량자산이라고 여겨 전 세계 돈이 몰려갔다가 허약한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막대한 자산이 휴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들은 부실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저버림으로써 위기에 일조했다.

이 위기의 교훈으로 일부 전문가가 모여 철저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비트코인의 세계를 만들었다. 몇몇 사람의 작위만으로는 전체 발행체제를 뒤흔들 수 없는 구조가 됐다.

큰 위기를 맞이한 중앙은행 체제는 잘못에 대한 뼈아픈 자성과 부실을 철저히 도려내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살인적인 고금리를 강요해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양극화의 왜곡을 심은 서구 금융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기 때는 제로금리, 마이너스 금리, 양적완화 등으로 오히려 돈을 더 쏟아 붓는 선택을 하고 있다.

화폐에 대한 정확한 가치평가가 사라져 경제위기를 겪는 나라가 마이너스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는 돈잔치를 하고 있다.

이 돈잔치를 뒷받침하는 건 수출해서 번 돈을 그대로 서방이 만들어 낸 이른바 '겉만 우량한 자산'에 대한 투자로 갖다 바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다.

이와 같은 화폐가치 평가에 대한 교란이 비트코인 확산의 기본 토대가 됐다.

비트코인 경제의 성장이나 다른 화폐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비트코인 세계의 몇몇 수뇌부가 마음대로 통화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도 없게 돼 있는 구조가 그렇게 많은 나라의 감시, 또는 단속과 규제를 받고도 10년이 훌쩍 넘게 건재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을 비롯한 몇몇 중앙은행이 자체 디지털통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만의 디지털통화인 리브라 발행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비트코인이 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절대로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따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의 익명성을 흉내 낼 수 없는 구조지만, 자신들이 만들어낸 화폐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자성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세계금융을 이끌고 있는 Fed(미국 연방준비제도)와 ECB(유럽중앙은행)는 더욱 심각하게 자성해야 한다.

이들이 전혀 자성하고 있지 않은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미국, 유럽 국채를 '묻지마' 식으로 사들이는 행태를 지속해선 안된다. 그 다음 위기가 터졌을 때 또 다시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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