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왕가의 여인들이라고 해서 시댁에 절대적인 호감을 가지라는 법은 없다.

고려의 국새를 이성계에게 넘겨준 정비 안씨를 '비운의 여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역사기록을 보면 그다지 비운스럽게 살다간 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왕실의 마지막 어른이란 점 때문에 무신경하게 '비운'을 붙이는 경우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10년까지 장수한 그녀는 대대로 조선 임금들과 연회 및 선물을 주고받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려왕실에서의 행적을 보면, 그녀의 생애 자체가 시댁인 고려왕실에 일체의 호감을 갖고 있기 어렵다. 중흥군주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남편 공민왕은 그녀에게 점잖은 글에서 쓰기 힘든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해 안씨는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결사적인 자세로 뿌리쳤다. 양아들에 해당하는 우왕은 이성적 호감을 드러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KBS의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 등장한 정비 안씨. 앞선 사극 '용의 눈물'에서는 70~80대의 노인으로 연출됐지만 '정도전'에서의 묘사가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 /사진=KBS드라마 유튜브 화면캡쳐.
KBS의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 등장한 정비 안씨. 앞선 사극 '용의 눈물'에서는 70~80대의 노인으로 연출됐지만 '정도전'에서의 묘사가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 /사진=KBS드라마 유튜브 화면캡쳐.

왕실로 시집가던 날부터 주변에서는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는지 몰라도 결혼생활에서 그녀는 기가 막힌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겪었다. 고려의 마지막 순간, 왕실 어른 체면상 기다렸다는 듯이 국새를 넘겨주지는 않았겠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끔찍한 기억이 가득한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한 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그녀에게 소생이 있어서 고려 왕씨의 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면 국새 넘겨주는 일이 이렇게 순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나라 무측천은 당태종의 시비로 입궁했다가 다음 황제인 고종의 눈에 띄어 총애를 독차지하고 황후가 됐다. 중국역사 3대 악녀라고는 해도 청나라 서태후와 달리 한나라 여태후와 당나라 측천무후의 통치는 훌륭했던 편으로 평가된다.

그녀가 아예 황실을 이씨가 아닌 자신의 친정 무씨로 바꾸려고 조카를 태자로 삼으려하자 무주시대(측천무후가 국호를 당에서 주로 바꾼 시대)의 현신 적인걸 등이 나서서 "일찌기 조카가 제사를 지내준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간언했다. 노쇠해진 측천무후는 자기가 폐위시켰던 아들 중종에게 다시 제위를 물려줬다.

한진그룹은 2014년 이후 끊임없이 총수일가에 대한 뒤숭숭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 때 만들어진 '땅콩 분노(nut rage)'는 외신에서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을 검색하는 가장 빠른 키워드로 지금도 등장하고 있다.

총수 일가의 'CEO 리스크'가 커진 와중에 한국 최초 행동주의펀드 KCGI의 적극적 주주행동 대상이 됐다. 지난해 조양호 회장이 타계한 후 조원태 회장 등 3남매의 경영권 갈등이 벌어지자 조 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선택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 조 회장이 이 고문 자택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는 뉴스가 이런저런 관측도 몰고 왔다.

이 고문은 4일 차녀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와 함께 입장문을 통해 "한진그룹 대주주로서 선대 회장의 유훈을 받들어 그룹의 안정과 발전을 염원한다"며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현 한진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외부 세력과 연대했다는 발표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진그룹의 안정과 발전에 힘을 합칠 것을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한진그룹의 누군가가 옛 충신의 행적을 본받아 "아무리 그래도 다른 성씨가 선대 회장님 제사를 모셔드리지는 않습니다"라고 충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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