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3-28 10:37 (토)
'기본임금'은 '공짜월급'이 아닌 '인생담보'다
'기본임금'은 '공짜월급'이 아닌 '인생담보'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2.19 1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4] 젊은 세대 미래 가치 바탕으로 공정한 기회 제공할 수도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뉴시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흙수저'의 문제는 흙수저로 태어난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동수저, 은수저, 금수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는 사회 전체의 역동성 상실과 노약화를 가져온다.

국가전체가 고인 물이 된다. 제도가 한정된 귀족층들의 대를 이은 세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불공정도 문제지만 이런 체제는 사소한 외부 충격에 너무나 허술하게 무너지기 쉽다.

태어난 시점에서의 차별이 있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건 본질적으로 부모의 재산문제지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라면 기회만큼은 최대한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재능이 있는 젊은 세대라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흙수저 인생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제대로 경력을 펼칠 수 있는 통로는 '그들만의 인맥'으로 지배돼 접근할 수가 없다.

점점 생계가 급해지다보니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경력이 아니라, 흐름도의 말단(Terminal End)으로 끝나는 직업으로 내몰린다. 좌절한 나머지 급기야 제도에 반항하는 일탈자가 돼서 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사회가 유능하고 건전한 새 구성원을 끊임없이 충원하려면 인재만큼은 폭넓게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몇몇 편협한 '패밀리'만으로 핵심 구성원이 충원되는 체제는 유전자 역시 편협해 세상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변화에 부응을 못하고 언제든 사라질 위기를 끌어안는다.

사회안전망의 첫 번째 조건으로, 태어난 모든 구성원에게 최소한 한 번의 도전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기본임금은 이러한 맥락에서 검토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기본임금이란 것이 오로지 선심 쓰는 '공짜월급'이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납세자 세금을 마구 뿌려대는 것이다. 세금투입은 국가가 행하는 투자다. 투자는 최대 회수가능, 최대 수익기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기본임금은 차세대 사회구성원들 양성이란 투자 목적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금 금리마저 이제 2%도 기대하기 어려워진 마당에 돈이 되는 것은 오로지 부동산뿐인 세상이다. 그런데 부동산이야말로 '가진 자들만의 리그'다.

젊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미래가치다. 이 미래가치를 국가가 담보로 활용하면서 양극화시대를 탈피하는 기회균등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국가는 신입 구성원의 미래를 담보로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 또한 투자인 이상 기대 이상 수익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기대 미달도 있을 것이다. 단, 국가의 차세대에 대한 투자는 그들이 물질적으로 얼마나 버느냐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준수하고 이를 지키는데 협력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순익을 따져야 한다.

기본임금을 받는 전제조건이었던 '사회 기여'에 미흡한 경우 어떻게 국가의 '투자손실'을 만회해 줄 것인가.

여기서는 '패자부활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문제와 함께 결부된 것이 '패자부활전'의 부재다.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재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구히 탈락하는 '엘리미네이션' 체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번 실패한 사람은 소속한 사회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까지 내던져 버릴 유혹을 받게 된다.

기본임금을 받은 후 때가 돼서 상응하는 기여를 못한 사람들을 별도로 조직해 눈높이를 조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영구적인 '2부 리그' 강등이 돼서는 곤란하다. 강등이라 하더라도 승격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물론 최초 도전 때보다 패자부활전에서의 기회가 좁은 것은 불가피하다. 어떻든 사회는 꾸준히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

비유의 차원에서 '담보'라는 단어를 쓰다 보니 부정적 어감을 줄 수도 있다. 기본임금을 받았다고 해서 '인생을 저당 잡힌다'고 표현한다면 상당히 느낌이 섬뜩하다.

하지만 담보란 본질적으로 경제체제 내에서의 자원 재분배 수단이다. 확대 재생산, 즉 발전이란 지금보다 더 큰 몸집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지금 가진 것 이상을 만든다는 것이니 발전이란 자체는 지금 가진 것만 투입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투입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이 아직 내 가진 것 가운데 아직 현금화되지 않은 것을 유동화한 담보다. 그래서 담보는 발전의 동반자인 것이다.

기본임금은 또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교육의 장기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다는 건 경기가 나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대학졸업만으로 일자리에서 요구하는 자격충족이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술진보로 어차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수명이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예전보다 더 늦게 취직해서 더 늦게까지 일하는 변화도 필요하다. 더 늦게 취직을 하게 된다면 인재교육의 시간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 취직이 안돼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함께, 상당히 중요한 질문에도 답을 해야 한다. 과연,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기여가 무엇이냐다. 이전 시대의 가치관만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