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산업' 유흥과 '선비의 풍류'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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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요즘 밤 시간 승객이 없다"는 택시기사들의 얘기는 '밤의 산업'인 유흥업종 지표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 이후 유흥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선 유흥업은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전염병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경기가 둔화되니 여흥을 위해 술집을 가는 발걸음이 줄어든다.

그러나 전염병이 유흥업을 위축시키는 진짜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확진자로 판정받을 경우 이전 2주일 동안의 모든 행적이 드러난다는데 있다고 한다. 아내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술집에 다녀온 사실이 들통 날 경우, 몸의 건강을 회복하더라도 가정의 평화는 심각하게 위협받기 때문이다.

대부분 남자들은 아무리 이런 사실이 들통 나더라도 공동체 일원으로서 책임감이 더 크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사실을 털어놓게 되며, 또 본인들도 그리 될 것을 알고 있다. 감출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더 두려운 것이다.

차제에 앞으로 평생 건전한 생활만 하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한다. 세상이 다시 평온해진 뒤에도 그 말을 지킬지는 가봐야 아는 일이지만, 어떻든 지금 당장 모두의 건강을 위해 자제하고 삼가는 마음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유흥을 즐긴다는 사실은 아내한테만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평판이 걸린 모든 사회생활에 이게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장관 청문회와 같은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신을 청문대상에 이입시키곤 한다. '내가 만약 저런 청문회에 나가면 예전에 어디어디 다녀 온 게 별 탈 없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아주 질이 안 좋은 '주색잡기'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로 평범한 직장인들의 유흥이란 '짓궂은 여흥'에 그칠 때가 많다. 실상을 알고나면 제3자뿐만 아니라 나의 반려자도 그렇게 격분할 일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 하루저녁 최소 30만원을 탕진한 점만 빼고는 그렇다. (물론 유흥이란 별 것 안했는데도 비용의 단위수가 늘어나기 쉽다.)

그런데도 일단 "그런 데를 다니냐"는 세간의 눈치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일종의 '낙인'을 찍는 이런 공격 대상이 되면 요즘 세상에 제대로 버티는 사람이 없다.

유일하게 이걸 정면 돌파한 사람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다.

그가 199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여성편력'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왕 회장은 "평생 여성에게 원망 살 일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선거기간 더 이상 이에 대한 시비는 없었다.

지금부터 30년 가까운 과거 일이고, 또 수조 원 재산을 가진 재벌의 경우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처신은 아니다.

'밤의 산업'인 유흥이 순간의 쾌락이 아닌 멋을 논하는 '선비들의 풍류'로 격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나의 오늘 즐거움이 다른 누구의 배신감이 되지 말아야 한다. 나의 배필이 나 아닌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것을 용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정말 폭 넓고 철저한 이해를 나누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서가 남성 중심적인 '아녀자 도리'를 강조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 내가 하는 똑같은 행동을 나의 짝이 해도 된다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의 풍류는 배신감을 가져올 리 없다. 단, 이미 '쇼 윈도' 관계로 서로 막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앞선 정주영 창업주의 말에 담겨 있다. 상대에게 원망을 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쥐꼬리 월급의 꼬리들을 모은 돈을 들고 왔다고 해서 폭언이나 거친 행동을 하는 건 풍류도, 유흥도 아닌 범죄다. 이런 행동은 요즘 세상에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다.

유흥업소라 해서 상대가 거부하는 행동을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20세기에 이미 폐기됐다.

나는 원망 살 짓을 안했는데 상대가 원망을 한다면 우선 내 도덕관념이 지금 세상의 기준과 맞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그런 것이 전혀 없는데 고발이 들어왔다거나 하면, 협박에 굴해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정당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

세 번째 원칙은 즐거움이 지나쳐 다음 날의 근심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세간의 평가나 누구로부터의 고발 걱정이 아닌 나 자신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들려 준 서경덕과 황진이의 야사가 있다. 서경덕은 당대 명기 황진이가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스승으로 존경한 선비로 알려져 있다.

국어담당인 담임선생님이 들려준 얘기로는 처음에는 황진이가 서경덕을 '무너뜨릴' 의도가 있었다.

자리에 같이 누운 황진이가 "나리는 ㅇㅇ(성관계 능력의 문제를 뜻하는 말)이신가요?"라고 약을 올리자 서경덕이 나지막이 "궁금하면 확인해 보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황진이가 확인해 본즉, 세간의 고약한 농담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의 반전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아무리 당대 명기라도 이 순간 '강한 남성' 앞에서의 여인 본능으로 기겁을 한 황진이는 그대로 도망을 쳤다.

남자들의 하루저녁 즐거움이 과도해지는 기준은 '사모관대(紗帽冠帶)'의 대(帶), 즉 허리띠에 달려있다.

순간의 쾌락만을 탐하다가 다음날 몰려들기 시작하는 근심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한두 달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내와 직장에 궁색한 변명을 하고 보건소에 가야 되는 건 아닌 지에서 부터 박상민의 노래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온 "결혼하는 날, 웬 여자가 아이를 떡하니 안고 나타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이 깊어진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안하고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했든 한번 즐거우려고 한 것이 두고두고 근심이 된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지킬 것을 지켜서 유흥을 풍류로 끌어올려도 누군가로부터 '헛짓'을 한다는 핀잔은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매장돼야 한다는 비판에는 "내 본시 그런 사람으로 무해하게 짓궂은 장난은 좀 했다"라고 인정하고 입을 닫을 여지는 있다.

인정할 것 인정 못하고 회피만 하려다가 더 큰 낭패를 겪는 건, 지켜야 할 것을 못 지킨 때문이 아니면 지나치게 겁이 많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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