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국의 석유 정치도구화 겨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제유가 30년만의 대폭락의 출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보낸 러시아 장관의 정중한 외교표현에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돌연 석유 증산으로 돌아서겠다고 밝히면서 9일(한국시간) 국제유가가 1991년 이후 최대폭락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이같은 결정은 러시아가 다음 달 이후 감산확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데 따른 대응의 성격을 가진 것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은 오후 3시30분 현재 배럴당 33.59 달러로 전주말보다 25.80% 하락했다. 미국산원유 4월물은 26.74% 내려갔다.

LA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의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회의에서 5시간동안 회의를 가졌다. 정중한 말투가 오고갔지만 알렉산데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감산확대에 대한 반대 입장을 지켰다.

노바크 장관과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인 압둘라지즈 빈 살만 왕자는 우호적 모습을 보여줬고, 노바크 장관은 OPEC과 러시아의 협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LA타임스는 회의가 끝난 후 사진이 시사하는 점은 다르다고 전했다. 노바크 장관이 앉았던 자리의 작은 러시아기가 눕혀져 있었다. 압둘라지즈 왕자는 회의장을 떠나면서 다른 참석자들에게 "두고봐라. 오늘은 우리모두에게 후회스런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감산확대에 합의하지 않은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감산 확대로 국제유가를 올리는 것이 미국 셰일업자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산유국 회의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현재 국제유가를 러시아가 감당할 만하다"며 감산확대에 대한 반대 뜻을 밝히고 있었다.

러시아의 미국에 대한 불쾌감은 러시아와 독일의 가스라인을 연결하는 노드스트림 사업 참여 기업에 대해 미국이 제재에 나선 데서 비롯됐다. 미국은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베네수엘라 사업도 제재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이 석유를 국제정치 도구로 쓰는 것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이 쌓여왔다.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은 OPEC와의 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러시아 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LA타임스는 전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푸틴 대통령은 OPEC과의 감산확대를 무산시켰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더 많이 생산하면서 만회하겠다는 증산방침으로 돌아섰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경제침체 우려까지 더해져 걸프전쟁 이후 최대 국제유가 폭락이 이렇게 해서 발생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