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외환위기, 2008 금융위기 극복한 백전노장의 지혜를 모두 모아야 한다

대구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대구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BBC 인터뷰는 참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그가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폭력을 질타한 장면은 책임을 회피하는 서구 지성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평가받는다.

강 장관에 대해서는 그동안 세간에서 '영어만 잘하는 비 전문가'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BBC 인터뷰는 '그만큼 영어를 못하는 전문외교관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반론의 계기도 되고 있다.

어찌됐든 한국의 방역 대응태세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대응태세를 분석하고 이를 다른 나라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외신 기사는 매일 끊임없이 몇 건 이상 씩 등장한다. 이를 일일이 다 번역해 국내독자들에게 전달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처한 심각한 현실은 방역에 대한 호평이 한국 금융시장의 안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화환율은 19일 40원 폭등했다.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3월30일의 43.5 원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세계 위기가 아닌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때만큼은 물론 아직 아니다. 당시에는 하루에 247원 폭등한 날도 있다.

사실 지금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한국만의 이유 때문이 아니란 면은 있다.

2018년부터 발생한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붕괴는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 심각한 충격을 주는 일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의 자유로운 교역을 상징하는 지표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치가 바로 이같은 세계교역의 지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경제당국이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전임자들도 보여주지 못한 지혜가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부처와 금융당국의 공직자들이 과연 얼마나 흔들리는 시장참가자들에게 최후의 보루와 같은 신뢰를 주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나 중요한 것은 시장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래도 여전히 관리되고 있다'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신뢰는 당국자들이 무엇보다도 당면한 위기 극복을 위해, 자신만의 신념으로 평생을 강조해 왔던 소신도 뒤로 미루고, 때로는 원수나 숙적으로 여기던 사람의 지혜도 마다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줄 때 형성된다.

전대미문의 어려운 일을 맞아 최대한의 지혜를 모으고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세계적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의 방역당국이다.

경제당국 역시 이 난국의 본질이 한국 아닌 외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어려운 때를 맞아 내놓은 정책이 불과 3년, 5년 후 긴 글 쓰기 좋아하는 학자들한테는 이리저리 고약한 말투로 조롱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그 사람들의 해야 할 본분인 것이고, 그런 서생들의 말잔치 '떡밥'을 기꺼이 제공하면서 결연히 당장의 살길을 모색하고 지혜를 모두 합치는 것이 지금 당국자들이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연 어려운 때를 여한 없이 맞서 싸웠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최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시급히 검토해봐야 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전 경험을 갖춘 당국자들을 가지고 있다.

나라가 어려운 때 명장과 명재상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한국 경제에 난세를 이긴 백전노장의 지혜가 절실한 때가 없다. 그동안 다른 일을 더 중시하는 바람에 잠시 뒷전으로 물러난 사람들이라도 지금의 시장을 안정시킬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들이라면 국가는 마땅히 그 재능을 주저 말고 빌리고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제 경제당국도 세계에 뭔가를 보여줄 때다. 그것이 세계가 자유교역의 상징인 한국에 대해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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