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외적 요인 전염병 우려가 사라질 때 함께 종료돼야
분명한 출구전략이 긴축발작 예방
장기화되면 대상 채권 고갈 현상으로 정책난맥 심화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마침내 한국은행이 양적완화의 과감한 조치에 나섰다.

한은은 26일 시장에 필요한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 내놓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도로공사 등 8개 공공기관 채권을 사들이는 형식으로 한은은 시중에 자금을 공급한다. 이를 위해 한은의 통화정책 동반자인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도 기존의 17개 은행과 5개 비은행 금융회사에 11개 증권사를 추가했다.

이번의 조치는 2016년 등장했던 한은의 양적완화와 발음만 같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당시는 국책은행의 자본금을 확충하기 위해 당연히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야 되는 것을 한은의 발권력으로 편법 대응하려던 것이다. 내용으로도 전혀 양적완화가 아니었다.

이번의 조치는 말 그대로 시중 유통통화의 양을 전통적 통화정책과 별개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26일 한은의 양적완화 시행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26일 한은의 양적완화 시행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경제 활동이 정지되다시피 한 현실에서 이번 조치의 불가피한 점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전염병 확산이 멎을 때까지 '금융 달력'을 정지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일도 못하고 이자만 불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겠지만,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1970년대의 '사채 동결'과 같은 특단의 조치로 절박한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구하기에는 한국은 이제 너무나 시장친화적인 경제체제를 갖고 있다. 시장의 작동원리를 저해하는 방식을 쓸 수 있는 단계는 이미 한참 지난 것이다.

통화당국인 한은은 불가피한 이번 조치와 함께 분명한 목적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조치는 철저하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따른 경제활동 마비가 풀릴 때까지라는 확실한 시한을 두고 시행돼야 한다. 전염병에 따른 우려가 사라져 사람들이 다시 활동을 하게 되면 한은은 지체 없이 출구전략에 나서야 한다.

이번 조치가 오로지 코로나19 대응대책임을 시장이 잊지 않도록 일관된 신호를 보내야 차후 일체의 '긴축발작'을 예방할 수 있다.

아울러 경제외적 요인인 전염병이 아니라 다른 경제적 요인에 의한 경제활동 저하까지 이걸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그런 오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2016년의 그릇된 양적완화와 본질적으로 같아지는 발권력의 남발이 되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대해 우리는 대책 없이 돈만 쏟아내다 마이너스 금리의 수렁까지 자초했다는 비판을 자주한다. 그런 아베 총리조차도 '헬리콥터머니'를 감언이설로 설득하는 측근을 멀리하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를 시행한 미국과 일본, 유럽중앙은행(ECB)은 저마다 진행상황에 차이가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는 비교적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2014년 종료를 선언한 후 2017년 10월 보유채권 매각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행과 ECB는 전혀 이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ECB는 끊임없이 양적완화 종료가 거론됐지만 다양한 이해의 상충 끝에 질질 끌다 다시 지금의 위기를 맞았다. ECB와 일본은행은 거듭되는 양적완화 끝에 대상이 되는 채권이 시장에서 고갈돼 정책의 고충을 더하고 있다.

한은은 이런 사례들을 거울삼아, 특단의 조치는 특정한 시기 내에만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 따른 국제교역 저하, 경제성장의 본질적 체질 개선과 같은 장기적인 요인까지 양적완화로 대응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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