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에게는 경영권, 주주에게는 주주권이 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누나와 행동주의펀드 연합에 승리했다. 지난해 타계한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 연임에 실패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조양호 회장 연임 실패 당시 "경영에 대한 간섭"이라고 반발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연임반대의 편에 섰던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 때문에 올해 조원태 회장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것 아니냐고 예단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고방식의 바닥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경쟁당국의 정책이나 지배구조 개선운동은 '오로지 남의 회사 빼앗으려는 것'이라는 몰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이런 예상은 정말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양호 회장 타계 후 한진그룹의 총수자리가 공석일 때 직권으로 조원태 회장을 한진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한 것이 공정거래위원회다. 만약 공정위가 공권력으로 재벌해체에만 몰두하는 곳이었다면 이때가 총수일가를 뒤흔들 최고의 기회였다. 그러나 공정위의 결정은 오히려 조원태 회장 승계를 공인해 주는 것이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지난해 국민연금의 '조양호 이사 선임 반대'에 대해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개념조차 무시하는 억지로 지적할 수밖에 없다.

경영자에게 경영권이 있다면, 경영실적에 자신의 이해를 함께 하는 주주에게는 주주권이 있다. 상법에서 이사선임을 주주총회 의결사항으로 명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주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에 대해 투표하는 것까지 경영권 침해라는 건, 주주는 무조건 돈만 내고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말아먹어 주가가 반토막이 되든 주식이 휴지가 되든 상관하지 말라는 억지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국민들이 아껴둔 재산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런 돈을 총수일가가 눈먼 돈 쓰듯 남용하는 것을 막고 감시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적극행사, 즉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래 취지에 맞게 활용되는 지에 대한 오랜 의구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의구심은 특히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국민연금이 말려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이 옥고를 치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국민연금의 진정한 독립성을 의심하는 관성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에는 일각에서 국민연금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구실로 총수일가를 몰아내려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대의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혐오감은 이번 국민연금의 선택으로 더욱 크게 근거를 잃게 됐다. 경제경영분야까지 억지스런 '색깔론'을 집어넣어 부실한 경영의 면책으로 활용해온 사람들은 이제 민망함을 느끼고 말을 가려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총수의 책임을 승계한 조원태 회장이 자신에 대한 모든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가뜩이나 어렵던 항공업계가 더욱 큰 타격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의 경영권 분쟁은 더욱 괴로운 일이었겠지만 조 회장은 일단 그 부담에서는 벗어나게 됐다.

공정당국이나 공공기금 모두 조원태 회장의 경영이 순리에 맞는 선택이라고 동의해 준 것이다. 조 회장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경영을 해야 당국과 국민연금 모두 역풍을 함께 맞는 일을 면할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이 엄중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실적저하 요인들이 있다. 이런 것까지 몰아서 책임을 추궁하는 건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 테니 크게 개의할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난관은 조 회장이 주주들의 기대보다 훨씬 더 빨리 경영역량을 입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차후 혹시라도 당국이나 공공기금이 총수를 반대하고 싶더라도 도저히 반대할 수 없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경영권을 지키는 진정한 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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