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경제전문 의원들의 대거 탈락은 큰 아쉬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정치에서 숫자는 수학의 숫자와 다르다. 때로는 1이 2 또는 3, 더 나아가 10에 맞먹는 힘을 내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10이 1도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 정치의 숫자다.

숫자는 표피일 뿐, 정치의 본질은 민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절대적 신망을 얻는 국회의원이 한 사람 있다면 그 사람은 국회에서 교섭단체 하나와 맞먹는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사퇴 기자회견장. 맨 앞줄 왼쪽부터 권영세 서울 용산구 당선인,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 황교안 대표. /사진=뉴시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사퇴 기자회견장. 맨 앞줄 왼쪽부터 권영세 서울 용산구 당선인,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 황교안 대표. /사진=뉴시스.

2008년 총선에서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인 당시의 통합민주당이 대참패를 했다. 직전 총선에서 151석의 과반의석을 얻었던 정당이 4년 만에 81석 정당으로 축소됐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합쳐 103석을 얻은 것을 두고 참패라고 하지만 당시 민주당은 정말로 개헌저지선 100석에 한참을 못 미쳤다.

서울이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때 선거에서 민주당은 48개 지역구에서 7명의 당선자만 내놓았다. 이번의 미래통합당이 49개 지역구에서 8명 당선시킨 것과 비슷했다.

수도권인 인천과 경기도에서는 63개 지역구에서 민주당 당선자가 19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힘들게 치른 선거에서 이기고 돌아온 서울 국회의원 7명 가운데 두 사람은 12년이 흐른 지금 현재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이 때 승리로 재선의원이 됐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3선의 중진의원이 됐다.

인천에서는 송영길 의원이 이 때 승리를 발판으로 인천광역시장을 하게 된다. 경기도에서는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생환했다. 김 전 장관은 군포에서 3선을 기록한 뒤 19대 선거에서부터 고향인 대구로 지역구를 옮겨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 외에도 원혜영 안민석 조정식 백원우 의원 등이 이 때 승리로 재선의원, 이종걸 의원은 3선의원이 됐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최재성 천정배 의원도 이 때 민주당의 경기도 당선자다.

민주당 입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수도권 선거에서 이겨서 돌아온 사람들 상당수는 이후 장관 또는 다선의 중진이상 의원으로 위상을 계속 키워나갔다. 아마 이 때 선거가 이들의 정치경력에서 가장 위태로운 고비의 하나였을 것이다.

의석수 격차가 막대해 민주당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한나라당 정부가 밀어붙이는 은산분리 완화를 비롯해 많은 법들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초기 최대 쟁점이었던 대운하와 정부의 세종시 건설 취소 법안을 막을 수 있었다. 여당 내 계파 간 대립도 있었지만, 의석 수 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야당의 무게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패한 소수당의 의원들은 스스로의 역량을 '의원 한 사람'의 차원 이상으로 키웠다. '강한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이긴 사람이 강해진다'는 이치와 비슷하다. 거대 정당의 의원 1인일 때와 달리, 소수정당의 수적 열세에 따른 한계를 체험하면서 민심을 헤아리는 안목도 깊어지게 마련이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에서 84명의 지역구 당선자를 냈다. 수도권의 당선자는 16명이다. 서울 강남~송파와 분당 등 통합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을 빼고 본다면 통합당에게는 12년 전의 민주당보다도 더 '살아 돌아오기' 힘든 선거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힘든 선거를 이긴 사람들인 만큼 새로운 국회에서의 역량과시가 더욱 기대된다. 앞서 대패했던 정당의 당선자들이 그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시민사회에서 용납받기 힘든 무분별한 언동에 대한 심판이 두드러졌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당선가능성에 보탬이 된다고 여겨졌던 막말과 돌출행동이 이번에는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낙선자가 막말로 인해 떨어진 건 절대 아니지만, 이번에는 지성과 교양 면에서 기준선을 넘지 못하면 수도권과 같은 경합지역의 당선자가 되기 어려웠다.

험담을 동원한 색깔논쟁은 보수 정파의 고질적인 폐습으로 지적돼 왔다. 이런 것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등원 기회를 가진 것은 앞으로 의정이 보다 더 실질적인 국정관리에 집중할 것이란 기대를 가져온다.

선거결과와 별개로 통합당에 아쉬운 점은 경제전문가 의원들의 대거 탈락이다. 유승민 의원이 당초부터 불출마를 선언한데 이어 이종구 이혜훈 의원은 '중진들 험지출마'라는 이유로 지역구를 바꿨지만 한계를 넘지 못했다.

강세지역이라 해서 마치 기업의 '인사발령' 하듯 선량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이 과연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인가. 이것이 당내 계파문제와는 무관한 것인가. 이런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 국회에서 여당의원의 신분이면서도 "지금이 'IMF' 때와 무엇이 다르냐"며 야당보다 더한 질타를 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이들의 지역구와 기회를 대신 차지한 사람들이 이런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분발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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