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시대와 SNS시대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요즘 정치인들은 골칫거리 하나를 안고 있다. 이른바 '소셜미디어(SNS)' 시대에 안고 있는 고충이다. 10여 년 전 '인터넷시대'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당시에는 천군만마였던 것이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곤 한다.

이 골칫거리는 지지층들의 지나친 성원이다. 인터넷시대에는 없으면 아쉽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던 것이다. 지금도 전통의 인터넷 방식인 홈페이지나 뉴스댓글을 통한 성원은 정치인들에게 제법 응원이 된다.

인터넷에서 기탄없이 자기 의견을 표출하던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새로운 수단이 등장하자 자신의 담장이나 단체토크방에서도 이런 성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런데 이게 예전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정치인이나 정당의 입장에서 그렇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자신과 뜻이 일치하는 글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을 확인했다. 댓글 하나하나가 합쳐져서 유권자운동으로 쉽게 확산됐다.

제주도민들의 지난 10일 사전투표 모습. /사진=뉴시스.
제주도민들의 지난 10일 사전투표 모습. /사진=뉴시스.

인터넷이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전혀 다른 점은 그 글을 누가 썼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점으로 인해 '익명의 악플'이란 폐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떻든 이는 인터넷게시판의 대체적인 특징이다. 쓴 사람이 누군지 모르니 그 글이 옳은가 아닌가만 따지면 되는 일이다.

페이스북에서의 글은 전혀 다르다. 내 타임라인에서 보이는 글이라면, 친구 또는 아는 어른이나 후배 등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올린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무슨 내용이 적혔나만 주목했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무슨 글이냐'보다 '누가' 이런 글을 올렸나가 더 주목된다.

인터넷에서는 내용만 보고 공감을 하거나 반대를 할 뿐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이 사람이 이런 소리도 하네"라는 반응이 가장 앞선다.

내용에 큰 문제가 없는 글이라면 "이 사람 또 이 소리네"하고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만약 상식선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무분별한 실수 또는 빈약한 심성이 드러난 글이면 상당히 문제가 된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하냐"라며 지적하는 경우는 알고지내는 처지에 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아무 말 않고 지나가는 것이 글을 올린 사람에게는 더 큰 '인생의 손실'이다. 언젠가 모임이 있게 되면 십중팔구 그 자리에서 "걔 요즘 왜 그러냐"라는 '뒷담'이 만연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장관을 지낸 모 인사가 밝혔듯, 말이 많아지면 불필요한 말도 늘어나고 실수가 섞일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의 선거를 앞두고 페이스북에서는 석 달 동안은 전에 없이 정치에 대해 이런저런 감정을 토설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카카오톡 단체토크방에도 정치뉴스를 열심히 퍼 나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당에 몸담은 사람들이 아닌데도 이러는 것은 단지 자신의 순간 감정을 토해내는 정도가 아니다. 내가 가진 생각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강요하려는 것이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평소부터 생각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부감이 훨씬 증폭된다. 정치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인데 자기 담장에 특정 정파를 눈살 찌푸릴 논리로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걸 보게 되면 격한 반발심이 생긴다. '네가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 결과가 나와서 너의 기가 꺾이는 꼴을 보면 속 시원하겠다'는 심정이 들게 된다.

그렇다고 평생 알고 지내온 우정을 이런 걸로 깨지 못한다. 그래서 애꿎은 데로 역풍이 가게 된다. 선거에서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SNS시대의 정치인들이 안고 있는 고충이 이런 것이다. 아무리 유권자들에게 몸을 낮춰가며 소통에 나서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역풍을 초래하는 걸 막으려야 막을 길이 없다.

물론 정치인들에게도 원죄는 있다. 그동안 정치인들은 극렬지지층을 선거승리를 위한 자산으로 여겨서 이들에게 '떡밥'이 될 만한 몰상식한 '막말'을 자기들 스스로 생산해 냈다. 배울 만큼 배워서 본심으로는 상당히 폭넓게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마이크만 잡으면 혐오와 차별이 가득 찬 말들을 뱉어내 자기 지지층들을 일부러 그런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런 사람들이 특히 이번 선거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은 것은 정치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내가 좋아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지지 않게 하려면 가장 근본적인 방법으로는 아예 좋아하는 정당 없이 무당파가 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요건이 참정권인 이상 이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유권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면 선호하는 정당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는 나의 정치적 성향을 무분별하게 들이대고 다녀서 역풍이 나는 경우가 없도록 삼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가 당선되고 낙선하는 건 남의 직장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일면식도 없는 후보를 위해 사돈에 팔촌인 것처럼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가득 채우는 건 참 객쩍은 일이다. 나를 아는 주위사람들을 심히 걱정스럽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정당한 의식을 드러내는 것과 덩달아 선거놀이에 빠져버리는 건 분명한 구분선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력과 축적해온 지성에 비춰 충분히 할 만한 얘기를 하는 것이냐, 정책이 결부된 자세한 현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에 필요한 공부를 한 적도 없으면서 어느 정당의 성명서나 무조건 퍼 나르는 것이냐가 구분선이다.

구분선을 넘어간 나의 페이스북은 주위사람들에게 반감만 초래해 결과적으로 싫어하는 정당을 도운 'X맨 담장'이 된다. SNS가 운동선수에게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에게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평소부터 표심을 드러내서 이마에 써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좋은 글을 올려도 대부분 '믿고 거르는' 글이 되기도 쉽다. 친구들은 빨리 선거가 끝나서 이 사람이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기만 기원할 뿐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 기업은 새로운 시대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런 서비스들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부문에 불러오는 변화는 거부하거나 맞설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이에 적응하는 몸가짐과 규범을 갖춰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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