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공' 찾기 어려워진 21대 국회... 금융시장은 누가 살펴 볼 것인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기자로서 가장 호사스런 취재를 한 것은 2004년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취재다.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는' 구태 기자들의 기준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취재현장에서 기사를 쓴 것 이상으로 평생 잊지 않을 지식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17대 국회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인 열린우리당이 1960년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개원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지금의 미래통합당)은 정치개혁에 대해 정면충돌하며 4년을 보냈다. 그러나 재정경제위원회(지금의 기재위)는 이런 정치 투쟁에서 완전히 벗어난 별 세상이었다. 이웃 상임위에 해당하는 정무위가 17대 국회 최초로 몸싸움, 위원장석 점거 등으로 조용할 날 없었지만 재경위는 차분하게 토론만 하다 거의 모든 회의를 밤 10시 되기 전 일찍일찍 마쳤다.

'전문성 높은 국회 재경위'가 바로 코스피지수가 700에서 2000으로 역사를 새로 써 간 4년의 시기와 일치한다.

사상 최초 종합부동산세 법에 대한 토론이 오가던 광경은 지금도 경이로운 데가 있다. 재경위 소속 아닌 의원들은 종부세에 대해 '좌파법안'이냐 아니냐만 옥신각신했다. 소관 상임위인 재경위에서는 '좌파'나 '좌익'의 '좌'자 한번 거론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의원들은 신문에서도 나온 적 없는 '세금 수출(tax export)'이란 개념을 이 상임위 의원의 기본상식 용어처럼 너도나도 구사하면서 이 법이 국세여야 하나, 지방세여야 하나라는 차원이 다른 토론을 벌였다.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야당소속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이 법은 필요한 법으로 생각 한다"며 자기 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발언도 내놓은 점이다. 야당의원 가운데는 지역구가 서울 서초·강남으로 종부세 적용 유권자가 가장 많은 곳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상임위 분위기로는 여야 큰 이견 없이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 확실해보였다. 그러나 야당이 다른 정치현안 때문에 국회일정을 공전시켜 이런 전망이 무산됐다. 여당은 나중에 의장 직권상정으로 이 법을 통과시켰지만 법이 실행되기도 전에 "더욱 강화된" 개정안을 다시 통과시켰다. 여야의 공감 속에 도입될 수도 있었던 종부세지만 재경위 차원을 벗어나 양쪽의 비경제전문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국회에서는 불가능했다. 그 후 종부세가 험한 세월을 보낸 건 이런 도입과정 때문일 것이다.

당시 재경위에는 여야모두 시장을 잘 아는 경제전문가가 수두룩했다. 경제전문가라고 해서 요즘의 "4차 혁명"같은 고상한 단어와 현학적 말투로 원고지 몇 장 채우고 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늘 주가지수나 환율, 금리가 폭등락했으면 그날 당장 오후의 본회의에서 경제당국자들에게 시장 혼란을 초래한 원인을 근거와 함께 제시하던 의원들이다.

거대양당에 강봉균, 김진표, 우제창, 이계안, 이종구, 이혜훈, 윤건영 의원 등 학계·경제관료·재계 출신 의원들이 명실상부한 실력을 과시했지만 이런 가운데 노동운동가 출신 초선의원으로 진보정당 소속인 심상정 의원이 첫해 국정감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변도 등장했다. 심 의원은 등원 전 모든 경력인 노동문제와 전혀 무관한 정부의 막대한 외환 파생상품 투자실책을 폭로했다. 정의당이 이번에 어려운 선거를 했음에도 심 의원이 4선 의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저력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문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사진=장경순 기자.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문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사진=장경순 기자.

역시 당시 초선의원이었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기자시절 경제 분야 취재를 통해 쌓은 식견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국민적인 주요 관심사로 끌어올렸고 카드대란을 초래한 재벌총수들이 전문경영인의 뒤로 숨어드는 행태를 고발했다. 경제 관료를 잠시 지낸 학자출신 김효석 새천년민주당(지금의 민주당으로 합당) 의원은 소수당의 한계를 넘어 관세청과 같이 별로 뉴스의 주목을 못 받는 소관기관 감사도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연구를 하고 회의장에 들어왔다. 그의 질문은 소관기관에 대한 질타보다 정책에 대한 공동연구에 가까웠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시장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들로 격찬을 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당 지도부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시장을 잘 아는 국회의원은 오히려 '계륵' 취급을 받아서 가장 먼저 공천을 못 받는 사람이 되곤 했다.

기재위가 17대 재경위와 가장 비슷한 진용을 갖췄던 것이 20대 국회 전반기다. 최순실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당시 집권당인 새누리당(지금의 통합당)에서 기재위로 돌아온 경제통 여당의원들이 "'IMF' 때와 무엇이 다르냐"며 강하게 정부를 견제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새누리당의 자유한국당 및 바른정당 분당 과정을 거치면서 20대 국회 후반기엔 경제통 의원들이 기재위를 떠나거나 당의 형편 때문에 경제문제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집권당이 된 민주당도 기재위에서 성과를 올린 박영선 김부겸 의원이 장관으로 입각했다.

후반기 2년 기재위 의원들의 지적은 신문에서 정치색을 넣어서 거론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고 신문이 받아쓰기 좋은 직원들 복지정책 등에 대한 규정 위반 문제제기가 주를 이뤘다.

아직 임기가 남은 20대 국회 기재위 의원 24명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11명이다. 기존 기재위의 심상정 의원과 기획재정부 차관 경력을 가진 추경호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의원 성향부터 기재위로 돌아오기를 원할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상정 의원도 당의 완전한 '원톱'이 된 입장에서 이슈생산이 제한적인 기재위에 계속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전의 '에이스'들이 떠나면 새로운 의원들이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21대 국회의 인적구성에서 '경제전공자'들의 부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초선의원들의 경우, 이것은 전적으로 짧은 몇 줄의 프로필만 갖고 '스캔'한 결론일 뿐이다. 심상정 의원도 초선의원으로 기자들을 처음 만날 때 "이 책부터 공부하고 있다"며 한국은행의 '알기 쉬운 경제지표'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 후 그는 오히려 기재위의 '기둥뿌리'가 됐다. 오히려 본인 전공인 환경노동위원회나 초선 때 희망했던 정무위원회보다 기재위에서 더 차별화된 활약을 펼쳤다.

지금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새로운 '노멀'이 되고 있는 시대에 고용기회가 없더라도 소비주체로 민간을 강화시킬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을 찾으려면,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 자체를 벗어나야 할 필요도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매주 5거래일씩 수많은 사람의 피눈물이 교차하고 승부가 갈리는 금융시장에 대해 촉각을 늘 세워두고 있는 사람이 기재위를 맡아줘야 된다는 점이다.

전혀 그런 공부한 적 없다면, 기재위에 배치된 그날부터 주경야독하며 공부를 해야 선량의 기본 도리를 하는 것이다. 보좌진 가운데 한 사람 당번을 정해서라도 그날그날의 금융지표가 전날보다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는 알고 살 것을 간절히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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