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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는 없고 양심의 자유만 남는 사회가 온다
프라이버시는 없고 양심의 자유만 남는 사회가 온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5.10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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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국가가 더 많은 것을 통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또 다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늘었다. 이번엔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감염자가 나왔다. 전 국민이 일 년에 가장 활기찬 봄날을 모두 희생하며 이룩한 방역성과가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 위기 지속은 경제 상황도 위협한다.

일부에서는 감염자가 다닌 클럽 중 동성애자들 전용 시설을 언론이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는 비판을 가한다. 한국사회가 이제 개인의 성향에 대한 모든 차별과 혐오를 배격해야 한다는 원칙에 절대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지금 상황에서 너무 기계적이라고 본다.

코로나19와 같이 무시무시한 전염력을 갖춘 전염병을 퇴치하는 것은 외적을 물리치는 것과 같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다. 당면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제한을 두는 것은 헌법적으로도 보장된 국가의 기본운영 원칙이다.

무섭게 번지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의 발병이 어떤 집단 내에서 집중되고 있는지를 알려야 할 필요도 있다. 현재 가장 위협받고 있는 집단을 특정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이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모두 "성적소수자들을 색출하려는 악의적인 행위"라고 한다면 지금의 다급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 공동체는 무슨 일들을 할 수 있을까.

개중에 "이 참에 한번 망신 좀 당해봐라"는 심정으로 전근대적인 편견을 부추기는 사람이 전혀 없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부추김이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어디까지 자극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는 10년 전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변했다. 성적소수자임을 공개하고 연예계를 스스로 은퇴했던 사람이 그동안의 변화를 깨닫고 지금은 다시 화면에 나와 시청자들에게 즐거운 웃음거리도 제공한다.

현재 절대적 다수의 관심은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개개인의 성향이 무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그들이 자기 성향을 강요하지 않는 한 그들의 성향에 간섭하려고도 않는다.

무조건 내 성향 알려지는 건 싫으니 우리가 아프든 말든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는 지금의 위기를 대처하는 상황에서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여전히 폐쇄적'이라고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당연히 보건당국에 알려야 할 사실을 은폐하는 행위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성적소수자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마땅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켜야 할 자가격리 등 방역지침을 무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정당한 응징수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약 일부 법률 문구의 해석문제로 무제한의 관용이 남발된다면 최일선의 방역에 나선 사람들은 대단히 허탈해진다. 국민들로서는 우리사회 방어 장치가 대단히 허술하다는 우려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경제 걱정도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개방된 사회의 가장 모범적인 방역국가로 격찬을 받았다. 얼마 전 개막한 프로야구 시즌은 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한국 방역은 또 한 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사회구성원 전체가 사생활의 자유, 즉 프라이버시 희생을 기꺼이 동의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최우선 순위 헌법적 가치로 여기는 일부 유럽 국가들이 한국과 같은 방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는 한국과 같은 프라이버시 희생을 더욱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 통신기술 발달은 국가가 조금만 개입하면 얼마든지 국민의 모든 행동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포스터의 일부. /사진=IMDb 영화소개.
영화 '뷰티풀 마인드' 포스터의 일부. /사진=IMDb 영화소개.

한국인들의 전통 심성은 지난 밤 행적이 밝혀지면 대단히 멋쩍을 일이지만 이것을 숨겼다가 내 부모와 아내, 자식을 위협하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내가 그러니 내 이웃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긴다. 조금 부정적 어감이 섞인 표현을 하자면 한국인들은 고도의 통제사회를 받아들일 용의가 돼 있다.

이와 달리 스웨덴을 비롯해 몇몇 유럽 국가들은 이번에도 사생활만큼은 국가가 절대 개입할 수 없다는 자신들의 헌법철학을 고수한다. 그러나 감염자가 크게 늘면서 이들 국가에서도 국가의 적극 개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의 흐름은 고도의 통제사회 도래가 불가피한 모습이다.

첨단기술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어서 이제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모든 사생활을 지켜보는 날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끝내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자유로운 인간성의 마지막 영역은 있다. 바로 양심의 자유다.

싫든 좋든 진정한 자유의 공간은 마음속에만 남겨둬야 되는 그런 사회가 불가피하게 도래하고 있다. 막으려야 막을 길이 없어 보이는 변화다.

고도의 통제가 무자비한 탄압과 같은 원시적 방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제도란 사람들이 이를 용납해야 정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허용되던 부당한 차별과 억압이 철폐되는 정도에 따라 국가의 더 높은 통제가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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