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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감시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민주적 감시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5.17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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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의 발달과 함께 자발적 통제사회의 진입이 시작됐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공동체 시민의식이 더 없이 중요함을 깨닫고 있는 시기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훌륭하게 대처한 것은 한국 국민들의 드높은 공동체 의식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몇 차례 확산의 위험을 초래한 것은 일부의 공동체 의식 결여로 지적받고 있다.

나뿐만 아닌 남에 대한 배려, 그리고 국가에 대한 확신이 전염병 억제의 큰 원동력인 한 편으로 방심과 거짓이 든든한 방역을 위협했다.

사람은 신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다. 정신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서 무한히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긴장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몸의 피로와 별개로 집중력이 저하되는 시점이 온다. 집중력이 저하된 틈을 파고드는 것이 방심이다.

최근 바이러스 확산에서는 4월말과 5월초의 방심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실 그 때쯤 한국 국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상당한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전례 없이 감염력이 무서운 병이 이때까지도 소멸되지 않다가 다시 일부 유흥장소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방심이 인간 본성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으니 방심 자체를 원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사람의 천성이 제각각이니 그 중에 특히 느슨한 사람이 이런 허점을 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한 번 방심으로 인해 허점이 발생한 것보다 이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전염병 확산처럼 방심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정직함이다. 거짓이 없어야 한다. 문제가 생긴 것을 분명히 깨달았는데 이를 숨기는 것이 거짓이다.

방심과 거짓 가운데서 사회에 더 큰 죄악을 꼽으라면 단연 거짓이다. 방심은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로 국가가 막으려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짓은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국가가 얼마든지 개입하고 단속할 근거를 갖는다.

국민들 모두가 비상상황을 맞이하면 더욱 더 거짓을 멀리하는 시민의식을 갖춰야겠지만, 사회안전망은 자발적인 정직함에만 의지해선 안된다. 체계적으로도 거짓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갖춰야 한다.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첨단 기술의 발달과 함께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논란거리가 발생한다.

과연 국가가 얼마나 국민의 거짓을 '강제적'으로라도 알아낼 수 있느냐다.

감시카메라. /사진=뉴시스.
감시카메라. /사진=뉴시스.

한국은 이번에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정보에 국가가 접근한 나라인 것이 분명하다. 몇몇 감염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처신으로 꼭 필요한 정보를 감춰 지역사회 전체를 위협했다가 방역당국에 의해 사실이 밝혀진 사례가 있다. 뒤늦게 사실이 밝혀져 더 많은 감염을 막았지만, 만약 본인들이 스스로 필요한 모든 정보를 밝혔다면 더 많은 사람의 감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이와 같은 개인의 정보를 국가와 공공단체가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변화해 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것을 위정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강제하는 것이라면 독재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조지 오웰의 '1984' 등 미래를 다룬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통제사회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가고 있는 고도 정보통제사회의 길은 이와 다르다. 권력자의 강요가 아니라 국민들의 절대적인 동의하에 이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사생활의 신성함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갑을 벗지 못해 이리저리 벗겨진 의료진의 손, 교황께서 수 천 년 이어진 전통에서 벗어나 텅 빈 광장에 홀로 서서 기도하는 모습에서 한국인들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28일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를 하기 위해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의 연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CPBC 유튜브 화면캡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28일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를 하기 위해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의 연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CPBC 유튜브 화면캡쳐.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길이라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가가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에 접근해야 한다는 절대적 공감대가 이번에 확인됐다.

반면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번 방역에서도 정부가 사생활에 대한 접근을 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이들 국가의 수준 높은 시민사회를 만들어낸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들 나라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휴대전화는 이제 없이 살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그런데 이것이 국가가 개개인의 행적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이태원 유흥업소 방문자의 자진 바이러스 검사가 부진하다고 판단하자 정부는 이동통신회사의 해당지역 기지국 정보를 입수해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 파악에 나섰다. 유흥업소 입구에서 가짜 전화번호를 쓰고 입장하는 행태에 대한 대응이다.

기지국 정보 활용이 잘 한 것이냐 잘못한 것이냐에 대한 찬반투표를 한다면 아마 못해도 80% 이상의 찬성이 나올 것이다. 당장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위협받는다는데 사생활 침해를 따질 사람은 거의 없다.

고도의 정보통제사회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앞으로 더욱 더 놀라운 기술이 나올 것이고 이제 개개인의 움직임은 더욱 작은 공간단위로 저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 관건은 불의한 억압사회의 등장을 막는 지성의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악용의 소지는 더욱 철저히 막아야 한다.

국민들의 정보가 저장된 곳에 대한 접근권은 더욱 엄격히 가려져야 한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의 아파트에는 모든 감시카메라들에서 벗어난 아주 작은 공간이 있다. 이것은 고도 정보통제사회에서의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

첨단기술 발달과 함께 사회안전망 확보의 필요성으로 인해 이제 국가는 국민이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모든 동선을 살펴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할 것이다. 윈스턴의 작은 방구석에 해당하는 것은 이제 정말로 양심의 자유밖에 없다.

국가의 감시기구와 정보전달체계를 통해 개개인의 양심부터 길들이려는 세뇌적 행위에 대한 철저한 차단이 함께 고민돼야 한다. 양심의 자유는 이제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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