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990년대만 해도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는 수준의 격차를 떠나 TV 화면부터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비교하기 힘들었다.

서울 잠실야구장만 세계적 경기장과 비슷하게 잔디가 넓게 깔려 있었다. 나머지 구장엔 외야에만 잔디가 있고 내야는 모래바닥이거나 아니면 운동장 전체가 인조잔디로 덮여있었다. 그나마 롯데자이언츠가 1985년까지 쓰던 홈구장이 내외야 모두 모래바닥이던 것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운동장 시설뿐만 아니다. 정규리그 때는 좌석을 꽉 채우는 관중을 보기도 힘들었다. 당시의 최대 흥행카드라는 해태타이거즈와 LG트윈스 정도의 대진이 아니면 홈런으로 날아간 공은 거의 아무도 없는 외야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주한미군 방송인 AFKN을 통해 볼 수 있던 MLB 경기는 그림부터 달랐다. 비단처럼 내 외야에 잔디가 깔려있고 기본이 3만 명 이상인 관중석은 팬들로 가득 찼다.

달랐던 또 다른 점은 카메라가 자세히 잡아주는 관중들의 표정이었다. 한국 야구장은 내야를 중심으로 뭉쳐있는 사람들이 조직적인 구호와 응원가를 그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치어리더보다는 '카리스마'있는 응원단장들이 응집력 있는 응원을 이끌었다. 해태는 호랑이조끼입고 호루라기를 부는 아저씨가 역사상 가장 위력적 응원가였던 '아리랑 목동'을 이끌었다. OB(지금의 두산베어스)는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은 단장이 경기 시작직전 팬들의 환호 속에 자신이 발판으로 삼을 쓰레기통을 들고 모습을 나타냈다. 연예인 유퉁은 자발적 단체응원이 시작될 무렵의 롯데자이언츠 응원단장이었다. 보기 드물게 잠실야구장을 가득 채우는 LG와 해태의 시합에서는 한쪽에서 시작된 파도타기가 다른 편 응원단의 호응으로 3만500석 스타디움 전체를 계속 도는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미국 방송에서 보이는 MLB 팬들은 일광욕을 하는 듯한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이었다. 한국 관중들은 승세가 오르는 상황에선 "으샤으샤"외치면서 기세를 더욱 올렸지만 미국 팬들은 이럴 때도 점잖게 일어서서 흥분보다는 경의를 표하는 분위기였다.

KBO리그의 모습은 2006~2008년 WBC와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잇따라 놀라운 성적을 올린 무렵,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팀의 승패를 떠나 그날 하루 경기를 최대한 즐기면서 보려는 팬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빈 좌석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열광적인 응원행태는 더 격렬해졌다. 야구장은 들썩거리는 록 공연장같이 변했다. 1990년대 한화이글스 팬들은 8회쯤 되면 비도 안 오는 날인데 우산을 펴서 빙빙 돌리는 '세러머니'를 했었다. 20여년 지난 지금은 비슷한 시간대에 모두 일어서서 "최!강!한!화!"를 외친다.

관중석을 가득 매운 팬들의 성원과 함께 야구장도 이제 모든 팀이 세계적 수준의 멋진 홈구장을 갖기에 이르렀다.

KBO리그에서 가장 낙후됐던 홈구장을 쓰던 삼성라이온즈도 이제 산뜻한 라이온즈파크에서 홈 경기를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KBO리그에서 가장 낙후됐던 홈구장을 쓰던 삼성라이온즈도 이제 산뜻한 라이온즈파크에서 홈 경기를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MLB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관중들은 1930년대 신사 모자를 쓰고 관전하던 조상들에 비해 옷차림만 많이 달라졌다.

바로 이런 문화를 MLB 관계자들은 프로야구 산업의 노화를 나타내는 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MLB의 노화는 특히 팬 층의 노화로 나타난다.

NBC계열 매체인 NBC스포츠 시카고는 24일(미국시간) 기사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미국 프로스포츠산업이 모두 이런 것은 아니다. NBC스포츠 시카고에 따르면 MLB는 특히 프로농구 NBA에 비해 상대적으로 팬 층의 노화가 두드러진 것으로 지적했다.

이 매체는 노화되는 MLB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는 스포츠리그가 NBA와 함께 한국의 KBO리그라고 강조했다. KBO리그와 비교한 것은 야구 자체가 노화되는 스포츠가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도 KBO의 배트플립이 언급됐다. 그러나 NBC는 단지 배트플립 행동 하나뿐만 아니라 그 배경인 MLB의 "즐길 줄 모르는" 분위기를 지적했다.

NBC는 KBO리그에서 롯데자이언츠의 외국인투수로 활약하다 현재 기아타이거즈 스카우터로 있는 라이언 사도스키의 2016년 ESPN과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사도스키는 한국에 와서 "내가 승리를 누려야 할 선수인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배운 것을 미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고 밝혔다.

NBC는 이와 비슷한 견해를 시카고 커브스의 내야수 하비에르 바에즈가 지적했다고 전했다. 바에즈는 2018년 내야플라이 후의 배트플립으로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감독으로부터 "경기에 대한 존경심"을 의심받았다.

바에즈는 MLB 유튜브 채널에서 "내 생각에는 어린 선수들에게 게임을 즐기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NBC는 "NBA가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 팬들을 이끌고 있다"며 2017~2018년 18~34세의 시청이 14% 늘었다고 전했다.

NBA는 경기방식이 스타플레이어 중심으로 확실한 인기를 끌고 있다. NBC에 따르면 NBA의 르브론 제임스는 모든 경기의 승부처에 등장할 수 있다. MLB의 마이크 트라웃은 이와 달리 게임 최대 승부처에서 타석에 설 가능성이 9분의 1에 불과하다.

NBC는 "어린이들이 마이클 조던의 어깨 짓과 르브론 제임스의 가슴을 치는 행동을 따라하면서 자란다. 유튜브에서 가장 파괴적인 덩크슛을 찾아본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상대를 더 강하게 파괴하는 것이 절대 경기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게 아니다"며 "바로 이 점에서 NBA와 KBO가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NBC는 MLB가 KBO의 타자 한 사람마다의 고유한 응원가나 배트플립을 따라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것들은 즐겁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에 대한 열정의 과시가 경기에 대한 존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MLB의 다음 세대를 위한 최고의 바램일 것이라고 N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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