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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반환논쟁, 산업주의에 굴복한 대학의 자업자득
등록금 반환논쟁, 산업주의에 굴복한 대학의 자업자득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7.05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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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토론 대신 단순 지식만 강조하더니 대면수업 부실에 할 말이 없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대학 3학년도 있었다. 형이다.

이때가 1980년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항쟁이 있던 해, 다시 말해 '5공 신군부'가 연이은 쿠데타로 집권하던 때다. 대학은 기나긴 휴교에 들어갔다.

거의 1년 가까이 일어날 생각도 않고 계속 잠을 자는 형을 보면서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꽉 들어찬 버스를 타러 대문을 나섰다. 한 해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 계엄령에 의한 대학 휴교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5·17 쿠데타에 의한 시위는 그해 늦가을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 대학생들은 정말 오랫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식인의 첫 단계에 들어선 대학생들은 지적 활동의 충동이 가득한 법이다. 신체성장이 왕성한 청소년들이 교실에 앉혀놓으면 좀이 쑤셔서 자꾸 친구들하고 툭탁거리고 장난을 치듯, 지성인의 첫 타이틀을 얻은 대학생들은 자신의 지성을 발휘하고 더욱 개발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난다.

휴교로 인해 중간고사와 기말시험 등 학사일정의 스트레스마저 없으니 대학생들의 지적 에너지는 더욱 넘쳐났다. 그래서 이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동아리 활동에 더욱 열성적이 됐다.

우리 형의 동아리는 영어토론을 하는 곳이었다. 이 기간에 동아리의 규정인 영문헌장을 개정하는 작업을 한다고 수개월동안 모여서 끊임없는 토론을 했다. 다방에서의 토론이 너무나 진지한 나머지 옆자리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형사는 5공 신군부가 지극히 싫어하는 대학생들의 개헌운동으로 오해해 이들을 모두 연행해 간 일도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50여개 조항을 영문으로 만든 헌장을 완성했다. 그 헌장을 나도 나중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법률 용어의 활용이 평균적인 한국 대학생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들은 이 때 당시 한국 대학생들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국내 미국인들의 조언도 받았다.

1980년의 대학생들이 학교는 안 갔어도 다른 의미 있는 일에 얼마나 열중했나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그해 대학가요제다. 그 어느 때보다 대학문화의 진수가 넘쳐나는 곡들이 이 때 쏟아져 나왔다. '연극이 끝난 후'와 같은 노래가 대상을 못 받은 건 '해안선', 그리고 '꿈의 대화'와 하필이면 같은 해 경쟁을 한 때문이다.

꼭 연인이 헤어진 심정이 아니라도 한국인의 깊은 서정이 우리 주위 곳곳에 가득함을 보여준 대학가요제였다. 그 후로 그 어떤 대학가요제도 이날의 엄청났던 무대를 다시 만들지 못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학생들이 지속되는 비대면 수업에 불만을 가진 나머지 등록금 반환운동까지 나서고 있다고 한다.

지금 대학가를 지배하는 논리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듯하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대학에 몸을 담았던 사람의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깊게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환운동 모습. /사진=뉴시스.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환운동 모습. /사진=뉴시스.

당시 대학에 다닌 '우리 시대'의 대학철학은 이렇다. 이미 대학으로부터 인정받아 입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지적인 문제를 연구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공인받은 것으로 자부했다.

배우지 않더라도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타당한 것인지는 교수들의 성적평가를 받아야 하고, 이렇게 4년을 반복하면 모든 성취를 학위로 입증하는 것이 우리의 대학에 대한 개념정의였다.

교수들에게는 상당한 학문적 권위가 부여됐다.

강의에 자신이 있는 교수들은 출석점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딱 한번 한다면 출석률이 가장 높은 첫 수업 때 수강확인을 위한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강의를 잘한다고 정평이 난 교수들 강의는 출석점검이 없었다. 이런 교수들은 '나한테 공부잘했다고 인정받는 걸 수업 때맞춰 오는 걸로 해결하려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분들의 진짜 본심은 '내 수업 안 듣고 더 잘 공부할 수 있는 데는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이었다.

1993~1998년 기간에 2년 반을 미국 대학에서 보냈을 때는 강의를 잘하나 못하나 출석점검하는 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서도 이런 관습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의 대학에서 영어를 강의하다 네바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찰스 로빈슨에 따르면 기술발달로 인해 출석점검이 너무나 쉬워졌고 교수들은 대부분 이를 학점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출석 따위로 점수 받을 생각 말라. 내 수업 안 듣고도 A+를 받는다면 그 사람이 이미 나를 초월한 훌륭한 학생'이라던 예전 교수님들의 기개가 사라진 건 아쉬운 일이다.

학기 전체 대면수업 비중이 극히 낮으니 등록금도 환불하라는 요즘의 상황은 더욱 아쉽다. 대학 측에서 "여기는 초중고생처럼 일일이 앉혀놓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고 반박할 엄두도 못 내고 "재정이 빈약해 불가능하다"는 하소연만 하는 모양이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르다"는 말을 대학부터 하기 어려운 이유는 최근 수 십 년 동안 대학당국 스스로 대학을 고등학교 연장처럼 이끈 것이 근본원인이라고 강조한다.

"학생은 시키는 공부나 하라"는 고등학생시절 논리를 들이대면서 재단소유 재벌을 비판한 글이 포함된 교내잡지의 배포를 막았다.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토론회를 면학분위기를 헤친다며 막았는데 사실은 그 토론회를 당시 정권에 비판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또 어떤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학과 기초과학 학과를 폐쇄했다.

학문적 재능이 있고 연구에 몰두할 동기부여가 돼 있는 학생들을 받아서 그 잠재력을 키워주려고 하기보다 엄청난 사교육으로 이미 많이 배워둔 학생들을 받아들이는데 더 몰두했다.

대학이 가진 힘의 원천인 자유로운 토론과 연구에 의한 지성 확대보다 단편적 지식의 수량적 축적만 몰두하니 대학과 전문학원의 경계도 모호해져 대학이 아닌 다른 교육기관에 있는 것이 더 나은 학과까지 마구 '대학교'의 울타리로 들어왔다. 학과 특성상 여학생은 등교 때도 스커트만 입어야 하는 곳이라면 그런 곳이 무엇 때문에 대학교의 한 학과로 있어야 하나. 지금의 사회에서 대학은 인생의 필수가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대학당국들이 스스로 산업주의와 기능주의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를 20년 넘게 지속해 왔다. 이제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알아서 잘 배워라'는 말을 차마 못할 것이다. "왜 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쳐주지 않냐"라는 대학생답지 못한 푸념에 뭐라고 변명할 처지가 못 되게 자업자득을 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기능주의에 빠져버린 대학이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업을 하는 것이 전제조건인데, 수업을 못하고 있으니 등록금 반환 요구가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인과응보다.

대학 특유의 자유로운 논의공간을 가둬놓으면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욕심은 많아 너도나도 '국제화'라는 목표로 외국 학생들에 대한 특별전형을 확대해 놓고 있다. 학부뿐만 아니라 대학원 수준까지 이런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의 일선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수심이 참으로 깊다.

이와 함께 지금의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에게도 자신들의 배움터, 그리고 자기스스로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들을 근절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극히 일부 학교의 일이겠지만, "몇몇 학번은 교내에서 카카오톡 금지" "선배를 보면 어떻게 한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정말 과연 이 나라에 대학이 존재하느냐는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대학당국이나 교수들 역시 대학의 일원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살다보니 우리 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평생 이 학교의 타이틀을 안고 살아갈 사람은 바로 학생들이다. 내 학교의 지적인 권위와 자부심을 절실히 지켜야 할 사람들은 학생들 자신이다. 학교 당국이 고등학교의 연장으로 대학을 이끌어간다고 해서 학생들이 내 학교를 고등학교의 연장으로 만든다면 그건 학생들 스스로에게 가장 큰 손해다. 대학의 이름을 가진 곳이라면 그렇다.

얼마 전 명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축제를 예쁘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어려운 사람들의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 명문학교에서 이런 소동이 난 자체는 유감스러웠지만 대학인들 스스로 이것을 문제로 제기하고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 아직은 우리의 대학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대학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성의 궁극적인 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일류사회라면 대학만큼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라면 산업사회를 갈갈이 파괴하는 얘기들까지 거침없이 나와야 그 나라의 산업사회는 더욱 건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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