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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 백선엽의 '공'과 '과'를 대하는 길
전쟁영웅 백선엽의 '공'과 '과'를 대하는 길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7.14 15: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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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입은 사람에 대한 존경은 국가경제의 신뢰로도 이어진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고 백선엽 장군이 타계해 현재 육군장이 거행되고 있다.

백 장군은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에서의 놀라운 전공을 세워 궁지에 몰렸던 국가의 운명을 되살린 전쟁영웅이다. 또 한편으로 그는 일제강점기 때 악명 높은 일제의 간도특설대 군인으로 독립투사들을 토벌했다는 오점을 남기고 있다.

공과 과가 엇갈리는 인물에 대해 한국은 한 쪽으로 평가가 쏠리는 많은 사례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연산군과 광해군 두 임금은 통치기간이 10년을 넘고 특히 광해군은 세자 시절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운 업적이 있음에도 두 왕은 폐출된 임금이라 하여 '조(祖)'와 '종(宗)'의 묘호를 받지 못하고 군(君)으로 격하됐다. 임금이었던 적도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 왕조에서는 폭군이나 무능한 임금도 회종, 애종 등 비판의 의미를 담은 묘호로써 평가하지만 조선은 아예 이씨 왕실 족보에서 들어내는 식으로 대했다.

백 장군에 대해 지금 한쪽에서는 전쟁영웅이니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독립투사들의 영혼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논쟁이 지나쳐 상대방에 대한 폭언까지 불사하는 것을 지켜보다보면 과연 이들이 순수하게 떠나신 분에 대한 추모 또는 독립운동에 대한 신심 있는 존경심 때문에 저러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평소 혐오스럽던 상대방 진영을 공격할 구실 찾는 데만 몰두하는 것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말이 지나친 사람은 당연히 그 본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적들의 강점기 때 애국지사를 토벌하는 일에 복무했다는 건 심각한 과오임이 분명하다. 국권을 되찾은 후 응분의 역사적 심판을 받아 마땅했을 일이다. 그러나 1945년 광복 후 역사는 그러지 못했다. 어찌어찌하다 그는 국가의 마지막 운명을 모두 짊어진 아주 작은 전선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적군을 격퇴하고 나라를 구하게 됐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 시민들이 줄 서서 빗속의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 시민들이 줄 서서 빗속의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가 일제에 복무함으로 인해서 이 나라의 독립이 심각하게 늦춰졌는가. 그가 다부동 전투에서 1개 사단으로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퇴함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이 건재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그의 공과 과를 평가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후자의 질문에는 그렇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한 달 여후의 인천상륙작전도 영남 한 구석에나마 정부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라면 그의 장례는 육군장보다 더 격상돼 거행되더라도 전혀 예의 지나침이 없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에 대한 추모로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소견이다. 북한이 한국의 전쟁영웅에 대한 기념을 빌미삼아 긴장을 높인 적이 있더라도 그 때마다 북한의 본래 의도가 다른 곳에 있음이 밝혀져 왔다.

남북이 마침내 평화통일의 뜻을 합치는 날이 오더라도 저마다 국난의 시기에 국가를 위해 충정을 바친 무인들은 과거 이념을 초월해 존경함으로써 새로운 통일국가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신심이 의심스런 말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백 장군의 유족들은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의 빌미를 원천 차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영웅 유족들이 절애(節哀)의 도리 또한 다 하는 모습에 더 한 층의 위로를 전할 일이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은 청와대 외교보좌관이던 2003년 참으로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당시 중국에서는 사스가 유행해 아시아 경제가 위축됐고 북한 핵 위기가 커져 미국이 영변 핵 시설을 공격할 것이란 전망이 무성했다. 한국에 대한 투자불안이 커져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격하할 것이란 예상도 확산됐다.

반 보좌관의 임무는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 담당자들을 만나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과 중장인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이 반 보좌관의 미국 방문을 수행했다. 이미 무디스는 신용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춰놓고 있었다. 등급을 강등할 것이란 예고조치다.

권태신 부회장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반기문 보좌관의 유창한 언변과 설득력 있는 논리에 더해 차영구 육군 중장의 별 세 개 계급장이 있는 군복"이 협상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또 다른 신용평가기관 피치를 방문하기 위해 홍콩 거리를 걷던 중 무디스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의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베테랑 외교관과 재무관료, 그리고 삼성장군의 군복을 갖춰 입은 군인 등 세 사람은 홍콩 시민들의 이목을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고 한다.

제복에 대한 마땅한 존경심은 그 나라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로도 이어진다.

오늘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개헌을 할 정도로 막강한 통치력을 과시하는 건 어찌됐든 그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지지도는 폭우 속에서 전쟁영웅에게 헌화하던 사진 한 장 같은 것들의 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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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재 2020-07-14 17:51:26
공이 있으니 과는 덥어주자는 식의 발상은 위험합니다.
특히나 공직에 있는 사람은 최대한 본인이 선택한 과는 없어야 합니다. 그때의 선택이 결과론적으로 잘못 된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간도특설대를 선택했을때 어떤 일인지는 분명히 인지했다고 봐야 합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도 분명히 알았을테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대적 상황때문에 같은 선택을 했다면 시대의 불행으로 간주할 수 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대항하는 것을 선택하였고 그 선택으로 자손들은 지금도 일제시대보다 못한 현실을 살고 있지요. 백선엽씨를 재조명해야 한다면 선행으로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들을 먼저 조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가 그때 일제에 대항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요.

진여이 2020-07-14 17:24:13
현재의 시국에 정말 필요한 시각인 것 같습니다. 그분이 태어난 일제 시대가 그분을 불행 역사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백장군에게 과오는 있지만, 백의종군하여 한국 전쟁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해 내신 업적도 분명 있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나 그 상황에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숨어서 폄하 만 해대는 사람들보다는 몇 만배 훌륭한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