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금융지주(회장 강만수) 산하 협력회사 목록을 유심히 살펴보면 ‘두레비즈’라는 자그마한 업체가 하나 있다. 바로 산업은행 계열사들의 용역을 담당하는 회사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아주 낯선 업체다.

이 업체가 담당하는 일은 그야말로 잡동사니 업무 그 자체다. 청소용역에서부터 꽃배달, 경비용역 등 금융업무와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나 하는 일을 산은이 라는 거대 금융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 사장 또한 산은출신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산은이 퇴직 임직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회사처럼 보인다.

 
이는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중소기업 영역을 어떻게 침범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지주사 설립취지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에게 문어발 확장 하지 말라고 허용해준 제도가 바로 금융지주사인데 산은이라는 거대 국책지주회사가 꽃배달이며 청소 용역까지 손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어발 확장이 다른 금융지주사에서도 비슷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금융기관들에게 금융지주사 설립을 허용해 주기 시작했다. 명분은 그럴싸 했다.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은행 보험 카드 증권 등 여러 금융기업을 한지붕 아래에 두도록 하면 한자리에서 모든 금융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첫 번째 금융지주사 허용 명분이었다..
 
그러나 금융지주사 허용의 진짜 명분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금융기관간 순환출자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문어발 확장을 막자는 게 본래의 취지였다. 금융사마저 순환출자를 통해 문어발 확장에 나설 경우 한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 다른 금융기관까지 줄줄이 동반 몰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금융지주사가 출자하는 형태로만 자회사를 두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지주사들의 탐욕은 이같은 명분을 보기 좋게 짓밟아버렸다. 순환출자만 하지 않았을 뿐 지주회사들은 앞다퉈 증자에 나섰고 그 돈으로 많은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신한금융지주처럼 힘 있는 지주사들은 조흥은행, LG카드 등 덩치 큰 금융회사를 인수해 계열 은행 및 카드사와 합병시키는 등 주요 계열사 몸집 불리기에도 앞다퉈 나섰다. 일단 돈을 꿔서 다른 금융기관을 인수한 뒤 자신들이 사들인 금융회사로부터 고율의 배당을 받아 빚을 갚기도 했다.
 
그나마 금융자회사 수만 늘린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거대 금융기관이 손을 대서는 안되는 중소기업 영위 업종에 까지 손을 마구 뻗쳤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청소 용역이나 꽃배달 사업도 그중 하나다. 상당수 은행이 거느리고 있는 인쇄업체, 문구 납품업체도 그중 하나다. 채권추심을 전담하는 신용정보회사도 그중 하나다. 신용정보회사의 경우는 은행마다 갖고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일부 금융지주사는 수십개나 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60개나 되는 문어발을 거느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금융그룹들이 재벌그룹들을 흉내내면서 생긴 문제다. 마구잡이 증자를 통해 자회사, 손자회사를 설립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공공성을 중시해야 할 거대 금융그룹이 중소기업 잡아먹는 업종에 마구 손을 뻗친 것이다.
 
금융그룹부터 중소기업 업종에서 손을 떼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벌들에게만 문어발 확장하지 말라고 다그칠 께 아니라 공공성이 높은 금융기관부터 문어발을 잘라 내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지주사에 대해선 계열사 수를 엄격히 제한하는 등의 초강수를 써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금융지주사가 내실을 기하지 않고 숫자 늘리기에만 몰두할 경우 금융시스템 운영자체가 부실해질뿐더러 중소기업의 설땅마저 갉아먹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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