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는 경제 정의 뿐만 아니라 재벌 자신의 경영권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이니 이를 해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당수 사람들은 예전에 형성된 순환출자는 그간의 ‘공’을 생각해서 용인하자는데, 이것은 경영권의 불안을 그대로 끌고 가자는 소리다.

 
2004년말, 외국계 펀드 하나가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소문을 퍼뜨린 것이 삼성전자 M&A 소동을 불러일으켰고 이 펀드는 이 틈을 타서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우고 한국을 떠났다. 순환출자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다.
 
재벌 그룹 내 출자자금이 돌고 돌아서 최첨단 주력 기업이 다 쓰러져가는 부실기업까지 주요주주로 모시고 있는 구조는 언제든 이런 M&A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멍청한 계열사 하나만 빼앗겨도 자동차나 전자, 이동통신 등 굵직한 회사까지 뺏길 수 있는 게 순환출자의 문제다.
 
형편이 이렇다면 과거 순환출자라고 해서 용인할 일이 아닌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고칠 수 있을 때 고쳐두는 것이 미래의 경제안보를 위해서 절실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순환출자 지분에 대해 강제매각 처분은 안하지만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법을 내놓고 있다. 의결권도 없는 지분이라면 자발적으로 처분해서 순환 고리를 해결하게 유도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의결권 제한에 따른 경영권 방어능력 저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내놓아야 더 큰 공감을 얻게 될 주장이다.
 
한국사회의 정서와 현실 모든 것을 따졌을 때, 순환출자의 해답은 역시 계열분리가 될 것이다. 재벌회장들이 작고할 때 많은 아들들에게 회사를 나눠주는 방식이다.
 
선대 회장 살아 있을 때는 나름 우애를 유지하다 어른 돌아가신 후 아주 자연스럽게 남이 되는 과정을 무수히 보여 왔다. 형제가 원수처럼 싸우기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런 정도면 더 이상 특수관계인이니 뭐니 규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혹자는 ‘콩가루’니 뭐니 하며 흉을 보지만, 이해가 전혀 다른 사람끼리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 여전히 한 덩어리로 뭉쳐서 부당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죄악보다는 말할 수도 없이 바람직한 것이다.
 
재벌 중에는 이런 계열분리의 섭리를 거스르고 ‘통째로 돌아가면서 맡으라’는 곳도 있다. 이런 재벌에서는 한 때 회장을 지냈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상사도 벌어졌다.
 
생각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한국사회에는 이제 상속을 부정하고 재벌 회장이 죽으면 국민주식처럼 처리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10% 넘는 세상을 오늘의 본지 독자들이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삼성과 CJ, 신세계를 한 그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아산도 마찬가지다. 계열분리 후 10년이면 완벽한 남이 된다.
 
그래서 계열분리가 확실한 해법이긴 한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재벌회장들이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 것이다.
 
굴지 그룹의 금융계열사 임원이 몇 년 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회장님 자제가 한 분 뿐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사람은 두고두고 그 그룹 소속으로 지낼 수 있어서 기쁠지 모르지만, 기업가 정신에서 별로 높은 점수를 받을 소리는 아니다. 설령 모그룹에서 떨어져 나와도 분가한 기업을 본가처럼 세우겠다는 자세도 없이 무슨 고위임원 자리를 차지하는가 말이다.
 
또한 재벌회장들이 여전히 딸들에게는 중요 산업부문을 안 맡기려는 경향이 있다. 오로지 유통 소비분야만 남겨주려고 한다.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일이 갑자기 비일비재해 진 것은 회장들의 ‘따님 생각’ 때문은 아닐까 한다. 학력 경력을 보면 아들보다 못 배운 딸도 아닌데 회장들은 있는 회사 나눠주기보다 빵집 음식점을 새로 차려주려 한다. ‘며느리 제사는 받아도 사위 제사 받았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는 정서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재벌 총수들이 큼직큼직하게 계열사들을 구획정리한다면 한국 경제는 훗날에 대한 부담을 엄청나게 덜어낼 수 있게 된다. 굳이 조카들까지 챙기라고 강요는 못하지만 아들 딸 차별 말고 현실과 미래를 살펴야 할 시기다. 훗날의 지배구조에 대해 자꾸 잡음이 생기고 무리한 일을 벌이면 지금은 한 줌에 불과한 ‘상속 폐지’론자들이 급속하게 주도 세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우선 산업부문 계열사와 금융부문 계열사분리부터 ‘강제 명령’ 따위와는 무관하게 시급한 미래 대비 작업으로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할 때 금융부문 계열사만 별도 상속을 시켰다면, 이렇게 분가한 재벌은 오늘날 금융전업가로 인정받아서 ‘삼성은행’도 벌써 태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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