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5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투자공사(KIC)와 수출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가 끝날 줄 모르고 지속되던 시간, 강길부 위원장 앞으로 쪽지가 하나 전달됐다.
마이크를 잡은 강 위원장은 잠시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중지시키고 “오늘 증인으로 출석한 허수영 호남석유화학 사장에 대해서 질문할 의원들 계십니까”고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강 위원장은 “그럼 허수영 증인은 이제 가셔도 좋다”고 말했다.
창가 쪽에 앉아 증인 발언대에 가려져 있던 허 사장은 몸을 일으켜 서둘러 답례를 표시하고 국감장을 빠져 나갔다.
이날 오전 9시에 출석한 그는 무려 8시간을 국회에 머물렀다. 이 시간 동안 그가 답변에 나선 것은 겨우 세 차례다. 이른바 허울 뿐인 자원외교에 대한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별다른 답변 기회도 없이 오전을 보내다 오후 들어서는 식곤증마저 간간이 이겨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허 사장의 어휘적 순발력이 돋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설훈 민주통합당 의원이 수르길 자원 외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호남석유화학은 짜기로 유명한 롯데 계열인데 이렇게 파격적인 거래를 하는가”라고 언급했다. 설 의원은 곧 이어 허 사장에게 답변 기회를 줬다.
순식간에 발언 순간을 맞은 허 사장은 “설 의원님께서 우리 회사를 ‘보수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상당히 사세확장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허 사장이 나섰던 세 차례 발언 기회 중 하나다.
증인 의무가 끝나 회사로 돌아가는 그는 “못해보던 경험을 해서 매우 유익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그는 지금 당장 풀려났다는 해방감으로 인해 8시간 붙잡혀 있던 고통은 완전히 망각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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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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