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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장 지역 편향인사, 그 후유증은 엄청났다
금융감독원장 지역 편향인사, 그 후유증은 엄청났다
  • 최원석 기자
  • 승인 2012.10.30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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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금감원장 독식이 MB 경제 망친 주범

 신한사태 2주년을 계기로 시작한 기획시리즈를 통해 지금껏 우리는 금융지주사의 허와 실을 대충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요약컨대 금융지주사제도는 그 제도상의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숱한 문제점들을 노출시켜 왔다. 때로는 금융지주사가 특정 금융인의 장기집권 수단으로 전락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지주사 회장 자리를 특정 지역출신들이 완전 싹쓸이하는 전유물로도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금융지주사 회장자리를 둘러싼 암투,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한 금융그룹들의 재벌흉내내기, 그리고 거대 금융기관들의 서민 또는 중소기업 홀대로 인한 양극화 심화 조장 등의 사례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그러면 우리의 거대 금융회사들이 이처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동안 금융감독당국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를 어쩌지 못한 배경엔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금융당국자들이 스스로의 약점을 많이 갖고 있어 정치적 중립속에 소신있는 감독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기관과 금융회사, 정치권력간 유착을 끊을 수 있는 획기적인 개선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감독기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지금부턴 금융당국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1>감독기관장 지역 편중인사 해소 시급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 금융감독당국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주요 금융기관장들이 영남권 인사들로 꽉 차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감시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장마저 5년내내 TK(대구 경북) 출신이 독식하게 된 것이다. 김종창 원장과 권혁세 원장이 그들이다. 여기에다 금융감독원 주요 임원자리마저 TK출신들로 연속 채워졌다. 이 나라가 영남인만의 나라가 아닌데도 그들 영남권 이웃사촌이 감독기관과 금융회사를 완전 장악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감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명박 정부는 현정부 출범 직후 경북 예천 출신인 김종창씨를 제 7대 금융감독원장에 발탁했다.
 
그는 2008년 3월부터 꼬박 3년간 금융감독원장을 지냈다. 하지만 그의 금융감독원장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임기중엔 물론이고 임기가 끝난 뒤에도 이런저런 일로 각계의 무수한 공격을 받았다. 국회가 그롤 몰아세웠고 금감원 직원들이 그를 핀잔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도 김 원장 공격에 가세했다.
 
특히 같은 고향출신인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 여부 조사와 관련해선 국회로부터 ‘늑장조사’추궁을 면치 못했다. 그가 왜 라응찬씨 실명제 위반조사를 자꾸 뒤로 미뤘는지에 대해선 많은 추궁이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라응찬 전회장의 고향은 김종창씨 고향 인근 경북 상주다.
 
하지만 2010년10월12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당 조영택 의원이“라응찬씨측이 운영하는 차명계좌가 많은데도 라씨가 연임에 성공한데는 금융당국의 묵인 또는 방조와 직무유기가 있었기 때문 아니냐”며 김종창씨를 몰아세운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아울러 일부 비판적인 언론이 금융감독원의 늑장 검사와 관련해 감독원이 라응찬 실명제위반 조사를 원치않는 정치적 비호세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 몰아부친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그러나 김종창씨를 공격한 건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다. 젊은 금감원 직원들조차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2012년7월19일 금융감독원에선 유례없는 성토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2000년 이후 입사한 젊은 직원 600여명이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대해 금융관료. 즉 모피아(재무관료집단)출신 감독기관장들의 책임이 크다며 이를 추궁하는 광고를 3개 조간신문에 게재하려다 감독원 상층부의 삭제노력으로 무산된 사건이다.
 
어쨌든 금감원의 젊은 직원들이 내보내려 했던 이날 광고문안 중엔 모피아 출신 전 금융감독원장의 부인이 부산저축은행 관련 신탁지분을 왜 보유하고 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이는 김 종창 전 원장을 겨냥한 것이다.
 
게다가 김 전 원장은 자신이 등기이사로 있던 아시아투자신탁이 부산 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금융감독원장 퇴임직전까지 차명으로 아시아신탁 주식을 보유한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물론 이 건은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금감원장 임명때 이런 것 하나 검증하지 못한 인사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전국 예금자 연맹도 2011년7월2일 “부실 저축은행 사태 원인과 책임”이라는 성명을 내고 김종창 원장 시절에 있었던 금융당국의 행태를 비난했다. 그들은 2008년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문제를 다른 저축은행에 떠 넘기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대출을 자산관리공사(캠코)로 하여금 매입케 하는 편법을 동원, 부실을 은폐하고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책임이 있다고 추궁했다. 다시말해 이명박 정권 초기 상호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대규모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몰고 온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명박 정권 초기 기업구조조정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리먼사태와 PF부실사태로 상호저축은행은 물론 건설회사들이 무더기 위기에 처했지만 금감원은 중견 및 중소건설회사 열 댓개 워크아웃조치하는 데 그쳤다. 당시 워크아웃을 당한 건설회사중 재벌기업 계열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LIG건설, 진흥건설, 극동건설 등이 줄줄이 무너진 것은 정권 초기 금융감독원의 건설회사 구조조정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입증해 주고 있다.
 
금감원의 신뢰가 이정도인데도 김 원장의 임기가 다하자 정부는 또다시 TK출신인 권혁세씨를 금융감독원장에 앉힘으로써 이명박 정부 내내 금감원장 자리는 영남인들만의 터전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권원장이 이끄는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와 잦은 갈등속에 급기야는 최근 금융위원회가 더 이상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빌딩내에 있지 못하고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로 이사를 떠나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금감원 TK 편향인사는 비단 감독원장 자리에 그치지 않았다. 금감원 임원인사에서도 종종 TK출신을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혔다가 뒷말을 낳기도 했다. 2010년 9월 총무국장이던 김장호씨를 그 막중한 중소서민금융본부장, 즉 상호저축은행 담당 임원에 앉힌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김씨는 나중에 부원장보가 된 신응호씨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당당히 부원장보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총무국장 출신을 중소서민금융본부장에 앉힌 게 못내 못미더웠던지 당시 김종창 원장은 김용환 수석부원장에게 중소서민금융 업무를 총괄 지휘토록 했을 정도로 금감원 인사가 요지경의 연속이었다.
 
결국 김장호 부원장보는 나중에 저축은행 문제로 검찰수사를 받다가 한강 투신을 시도하는 사태까지 촉발시키면서 그에게 임원의 완장을 채워준 인사권자의 코도 납작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초기에 금융당국 수장들이 부실 상호저축은행과 부실기업 구조조정만 잘 했더라도 우리 경제가 오늘날 이토록 어려움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금융감독기관장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다. 감독기관장 뽑을 때 지연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탕평인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탕평 인사를 한 뒤엔 감독기관장의 임기와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어떤 외부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특정 금융인에 대한 늑장조사, 부실 기업구조조정 지연 등 우리 경제를 말아먹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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