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선 ‘팀포수’라는 얘기가 유행어처럼 나돌았다. 팀포수란 금융감독원 직원중 ‘팀장이 되기를 포기한 나이든 수석검사역’을 일컫는 신조어다. 그것도 아주 자조섞인 신조어다. 수석검사역급 금융감독원 고참직원들이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줄줄이 사법처리되면서 터져나온 얘기다.

 
그랬다. 2011년은 금융감독원이 출범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한해였다. 금융감독원 간부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부산저축은행이 쓰러지면서 구속행렬이 시작됐다. 저축은행에서 받아 먹은 뇌물이 독극물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같은해 5월19일 검찰은 금융감독원 이모팀장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모팀장은 2010년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수석검사역으로 재직할 당시 부산저축은행 검사를 맡으면서 최소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검찰이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나서면서 저축은행 피해가 왜 커졌는지, 금융감독원 비리 직원이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은 2011년 3월 감사원 보고서를 확보했다. 감사원 조사결과 부산저축은행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한도를 이미 넘긴 채 심각한 부실상태에 빠져 있었고 금융감독원은 감사원 요청으로 6차례에 걸쳐 부산저축은행 계열사 검사를 한 것으로 돼 있다. 또 2009년부터 2년간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20차례나 검사를 벌인 정황도 포착했다. 그런데도 부산저축은행 부실은 영업정지때까지 외부에 베일처럼 가려져 있었다. 부산저축은행 커넥션 뒤엔 감독원 간부 뇌물수수라는 검은 의혹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열흘 후인 5월29일엔 보해저축은행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금융감독원 간부 3명이 구속됐다. 이들의 죄질도 가관이었다. 2006년부터 2009년사이에 검사 무마 등의 댓가로 이사비용을 2억원이나 챙긴 간부가 있었는가 하면 카드대금 1억6000만원을 갈취한 사람도 있었다.
 
금감원 간부가 구속된 것은 이들 외에도 여럿 더 있다. 그런가하면 저축은행 비리혐의와 관련해 금감원 부원장보가 한강에 투신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김종창 전 원장이 수사를 받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어쨌든 금감원 중견 간부들이 저축은행 비리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자 금융감독원의 인사시스템이 도마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팀포수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앞서도 거론했듯이 금융감독원은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의 감독기관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감독원 통합 이후엔 은행감독원출신들이 가장 잘 나갔고 다음은 증권, 보험감독원 출신 순이었다. 신용관리기금 출신들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인사도 이뤄졌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50이 넘었는데도 팀장진급이 어려웠다. 만년 수석검사역으로 지내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이 바로 팀포수들이다.
 
그리고 팀포수 중 상당수는 진급의 희망이 없어지자 엉뚱한 곳에 눈을 돌렸던 것으로 주변에선 해석했다. 바로 저축은행들과의 유착이다. 여기서 비리가 생겼고 저축은행이 쓰러질때까지 고객들만 멍청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감독당국자가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부실 저축은행에 흘리는 바람에 사전 인출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금융감독원 인사시스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는 이유다.
 
그러나 인사시스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청와대 실세, 감사원 실세, 국세청 직원, 정치인 등이 대거 구속되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상황에서 감독원 검사부 직원들이 아무리 제대로 된 검사를 벌인 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선 검사현장에서 저축은행 실태를 적나라하게 적발해 와도 금융감독원 윗분들이 시큰둥하게 처리해 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진다는 자조도 뒤따랐다. 검사부 직원들이 외압때문에 이왕 저축은행을 어쩌지 못할 바엔 차라리 좋은 게 좋은 쪽으로 자포자기 할 수도 있다는 우려섞인 지적도 흘러 나왔다. 감독원 전체가 외압으로부터 강해져야 일선 검사역들이 삐뚤어진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란 충고도 제기됐다.
 
어쨌든 이런 일이 터지고 나서 금감원 사람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한탄했다. 일선 금융회사 감사로 나가있는 OB들도 다른 직원들 보기가 부끄럽다고 자조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파장은 아주 컸다. 금융감독원만 망신을 당한게 아니라 정권이 흔들릴 정도였다. 저축은행 하나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것이 정권 전체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부산주민 3명중 1명이 저축은행 피해자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대통령도 가만 있질 않았다. 2011년 5월4일 예고 없이 금융감독원에 들이닥쳤다. 호된 호통이 내려졌다. “권력형 비리에 유착한 공직자는 용압할 수 없다”고 꾸짖었다. 감독기구 개편지시도 떨어졌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긴급 쇄신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금융기관에 금융감독원 출신을 감사로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금융기관이 요청해 오더라도 거절하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골프금지와 과다 음주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이 금융감독원만 호통치고 금융위원회나 기획재정부,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등에 대해선 아무 말 없이 지나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모두 모피아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곳들이다. 대통령 질책대상에서도 모피아는 사각지대였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