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거리를 걷다 보면 노란색 바탕에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늘어선 포스터가 유독 눈에 띈다. 길거리부터 시작해 노점 메뉴판, 식당 벽면과 냅킨통까지 곳곳에 자리를 잡은 이 포스터는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의 공연 포스터다.

자살이라는 소재로 웃음을 주는 블랙코미디 극 <죽여주는 이야기>는 2005년 초연해 지난 2013년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자살 사이트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자살을 돕는 안락사와 그를 찾아온 의뢰인 마돈나, 뒤이어 등장하는 바보레옹이 얽히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삼형제엔터테인먼트 이훈제 대표
삼형제극장에서 매일 3회 이상 진행되는 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 밖에 길게 늘어서는 줄은 대학로 진풍경을 이루는 한 장면이 됐다. <죽여주는 이야기> 제작사 삼형제엔터테인먼트의 이훈제 대표는 지금도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의 기분을 유쾌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일단 재미가 있어야 흥미가 생기고 발전이 생긴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음식 첫 맛이 좋아야 그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는 것처럼, 뭐든지 처음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도 마찬가지죠. 첫 공연이 재미있어야 그 다음에도 공연을 보고 싶어져요. 저는 죽여주는 이야기가 많은 관객에게 그런 공연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죽여주는 이야기 공연 현장
이훈제 대표는 죽여주는 이야기의 인기 비결을 매력 있는 배우들과 활발한 관객 참여형 장치로 꼽았다. 일본 아이돌 출신 배우를 포함한 꽃미남 배우들과, 관객의 극중 몰입도를 높이고 배우들이 끼를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는 극적 상황이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이훈제 대표가 처음부터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스포츠마케팅 관련 종사자로 일하며 30여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로 나름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불가피한 사고로 회사를 전부 정리해야 했고 충격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겪었다. 그런 이훈제 대표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건 둘째 동생 이훈국 연출이었다.

“동생이 죽여주는 이야기의 대본을 만들고 같이 공연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 때부터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 들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대학로라는 공간에 죽여주는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알리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노점, 카페, 식당 할 것 없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포스터와 스티커를 붙였죠. 저를 반기지 않던 분들도 있었지만 메뉴판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서 가져다 드리는 등 꾸준히 정성을 보이니 결국 제 편이 되어 주시더라고요.”

그는 발로 뛰는 홍보와 함께 네이버 지식인을 통한 홍보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2008년 당시에는 지식인 마케팅 활용사례가 많지 않았지만, 마케터의 기질로 그 가치를 일찍 깨달았던 것. 한편 죽여주는 이야기 거리 홍보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는 지금까지도 각종 선물을 꾸준히 전달한다. 이훈제 대표는 ‘상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워낙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 같이 잘 되야 일이 좋게 풀리더라고요. 상생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짜장면 배달, 웨이터, 주차요원 등등 남들이 힘들다고 하는 일을 해봤기 때문에 그분들의 처지에 동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수익 중 일부라도 대학로 환경 개선에 쓰고 싶어요. 제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고요.”

이훈제 대표가 맨 손으로 시작한 연극은 명실상부한 대학로 최고 유명 공연이 되었다. 도움을 준사람들에게 꾸준히 베푸는 활동을 하고, 더욱 많은 경험을 하라는 뜻에서 직원들의 해외 여행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모든 게 ‘부족하다’고 말한다.

“저는 늘 모자라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부족하다고 느껴야 더 채울 수 있고,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이 모자람을 채우려고 노력할 거에요. 물론 즐거워야 가능한 일이겠죠. 삼형제엔터테인먼트 역시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더 많은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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