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집 개가 아니라 불독이 되라는 얘기다

 지난 11월4일 금융위원회 추경호 부위원장은 금융감독원의 최수현 수석부원장을 비롯한 금융감독원 임원들을 화급히 불러 모았다. 일요일의 긴급 준수뇌부 회동이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들은 휴일도 마다하고 머리를 맞대고 나선 것일까.

 
때늦은 만남이었지만 다행스런 회동이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두 기관을 향한 여론은 이미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대통령 후보들이 경제개혁을 외치고 있는 마당에 허구한날 충돌하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어느새 다가 올 새정부의 보기좋은 개혁의 표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둘 사이는 가관이었다. 막장까지라도 가고보자는 의도적 충돌도 잦았다. 상대편이 어떤 정책을 발표하면 다른 한편은 똑같은 현안을 놓고도 정반대의 견해를 내놓았다. 심지어는 상대편이 해야 할 일을 자기들 영역이라며 억지를 부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의 역할이 뒤죽박죽 엉키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두 기관이 간판을 바꿔달기라도 한 듯 서로의 영역을 침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금융감독정책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가끔은 금융위원회가 충동질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싸움을 거는 쪽은 금융감독원이었다. 두 감독기관의 싸움에 죽어나는 것은 민원인들이었다. 감독기관에 민원을 냈던  기업들이 당하고 금융기관이 궁지에 몰렸다. 금융소비자들은 갈팡질팡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희생양이 됐다. 10월26일 있었던 일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대부업 개인신용정보(CB)의 온라인공개를 강행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앞둔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이 나이스신용평가에 “정보공개를 강행하라”는 지시를 먼저 내려버린 것이다. 황당해진 금융위원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 이전에 (금융감독원이) 그런 공문을 보낸 것 자체가 과한 행동”이라고 받아쳤다.
 
두산인프라코어도 둘 싸움에 휘말렸다. 이 회사가 발행한 영구채권의 성격을 놓고도 두 기관은 서로다른 해석을 내렸다. 금융감독원은 “(영구채권도)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금융위원회의 생각은 달랐다. “자본이냐 부채냐의 논란이 큰만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친 서민 금융정책을 놓고도 둘은 충돌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7월부터 틈만나면 서민금융 발언을 쏟아냈다. 7월26일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 땐 단기 연체자에 대한 "은행권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조정)을 활성화하겠다"고 했고, 9월13일 인천 남동공단 방문 땐 "은행권이 하우스 푸어 대책으로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을 공동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10월9일 국회정무위 국정감사에선 “모든 주택대출에 프리워크아웃을 확대하겠노라”고 했고 10월25일 광주 서민금융상담 행사에선 "은행권이 10%대 금리의 서민대출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10월26일 전남 대불산업단지를 방문해서는 "은행권을 향해 동산담보대출 범위를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권 원장이 숨 가쁘게 이 정책 저정책을 쏟아내면서 두 기관의 충돌 수위도 높아졌다.
 
특히 은행권 프리워크아웃과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등의 정책적 발언은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조율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 것이어서 시장에 적지않은 혼란을 던져줬다.
 
서민 금융정책과 관련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정책적 상위 기관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권 원장이 단기 연체자에 대한 프리워크아웃을 독려한데 대해 김 위원장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제도가 있는 만큼 기존 제도를 활용하면 되지 프리워크아웃을 강요할 사항은 아니라고 맞받았다.
 
또 권 원장이 하우스 푸어대책과 관련해 "우리은행이 도입한 트러스트 앤 리스백 제도를 전 은행권으로 확대하자"고 한데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개별 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고개를 내 저었다.
 
두 기관장이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히면서 은행권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 지를 놓고  갈지자 행보를 보였고 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누구의 말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권원장 발언중 일부 내용에 대해선 시장경제원리를 훼손시킨다는 지적이 뛰따랐다.
 
그 뿐 아니었다. 권혁세 원장이 10월30일 제5회 국제보험산업 심포지엄에 참석해 저금리 시대 보험사 역마진 해소를 위해 내년에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금융감독원이 법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지 묻고 싶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모피아출신 조차 시끄러운 금융감독정책을 탓하고 나섰다.
 
한 전직 재무부 고위관계자는 김석동 위원장과 권혁세 원장은 비록 몸은 다른 곳에 있지만 다퉈서는 안 되는 사이라고 했다.  “금융감독이라는 게 떠들어가며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충고 했다. 감독기관이 금융기관들에게 큰소리를 낼 수록 시장은 불안해진다고 했다. 조용한 감독을 할 때 시장도 차분해지고 감독효과도 커진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입장에서 법이나 제도를 고치고 싶을 땐 시장에 대고 떠들지 말고 당국간 조용한 협의부터 거치는 게 순리라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금융감독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불독처럼 조용한 감독이 최고라고 거듭 주문했다.
 
모피아 사람들의 충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권 원장은  행시 23회 동기이긴 하지만 정책적 상위기관장은 엄연히 김 위원장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나이도 많고 승진도 빨랐기 때문에 둘 사이에 필요한  예우를 지키는 것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얘기도  뒤따랐다.  비록 권 원장이 현 정부 핵심 지역인 TK(대구 경북)출신이긴 하지만 둘 다 재무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란 점을 잊어선 안된다는 충고도  이어졌다. 두 기관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언제 옷을 벗어야 될지 모르는 고위직 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것도 주문했다. 마음을 비워야 할 사람들이 사사건건 부딪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가뜩이나 모피아가 표적이 되고 있는 마당에 모피아 끼리 충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기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모피아 뿐 아니라 상당수 젊은 금융감독원 실무자도 더 이상의 싸움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둘이 으르렁거릴수록 감독기관을 향한 더 매서운 개혁의 칼날이 들어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두 기관의 준수뇌부가 일요일 회동까지 가져가며 갈등관계 수습에 나선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다행스런 일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둘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들 뒤엔 더 이상 실망시켜선 안 될 금융소비자들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주문도 있었다. 저축은행  비리로  감독기관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진 게 엊그제인데  더  싸울 명분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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