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2] ‘IMF 외환위기’의 1997년 새해 벽두 최대 관심사는 경제가 아니었다. 1996년 말 크리스마스 새벽 국회에서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이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제1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앞선 총선 참패로 의석이 70석 규모로 대폭 축소됐다. 50석으로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1] 우선 2016년의 얘기를 꺼내보기로 한다. 최근 한국 조야에서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와 비슷한 상황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유승민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4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5일 유일호 경제부총리에게 본격 문제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경제부처를 두둔하는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0] 프로야구 LG트윈스의 이상훈은 1995년 시즌 20승을 올린 에이스였다. 시즌 20승은 1990년 선동열 이후 5년 만에 나온 귀한 기록이었다.LG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야구 전체의 에이스였다. 다음해 현대 유니콘스와의 개막전에 선발로 나선 것은 당연했다.LG는 전년 국가대표 거포로 기대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9] 한국 경제가 부도나 경제주권을 외국투자자들에게 위탁한 것이 1997년 외환위기다.흔히 ‘IMF’위기라고 불리는 국난의 1997년 새해를 나는 좀 이상하게 맞이했다. 보신각종을 33번 울리는 종각 근처에 있기는 했지만, 그걸 보러 간 것이 아니고 직장인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8] 흔히 ‘IMF 위기’라고 불리는 국난은 정확히 말하면 ‘1997년 외환위기’다.그런데 이 시리즈를 통해 나는 1997년만 잘 대처했다면 과연 한국이 위기를 피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1996년에 만사를 돌이키기 힘든 지경으로 몰아넣었을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7] 이번 회에서는 또 한 번 1996~1997년의 시간 흐름에서 벗어나는 얘기를 하기로 한다.딴 얘기를 곁들이는 동안 독자들께서는 1996년의 뭐가 날듯 말듯 하면서 ‘설마 나겠어?’하는 상태가 그해 연말까지 마냥 이어지는 시간적 감각도 공유했으면 한다.이 시리즈의 제목에서 보듯, 은행원 때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6] 아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돈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내가 돈이 어디 있는가.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돈 얘기를 하러 왔다.내가 은행원이기 때문에 돈 나올 곳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것이다.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라진 은행원들의 특권이 아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5] 엄청난 시민 저항을 불러일으킨 1996년의 노동법 파동은 무엇이 정답이었는지, 알기도 힘들지만 알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 다음해의 외환위기를 다루는 관점에서 그렇다.이미 한국은 노동법에 대해 그 어떤 ‘신의 선택’을 했다고 한들, 기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외환위기의 길로 가고 있었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4]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기억에 의지해서 20년 전 일을 쓸 때는 계절적 감각이나 특별한 일에 의지하게 된다.노동법 파동으로 은행원들이 탑골공원에 집결할 때 대표로 참여하는 사람들한테 추운데 잘 다녀오라고 얘기했던 것을 근거로 12월이었음을 추측한다.상당히 깊이 있는 국제 세미나가 제일은행 본점에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3] ‘항명(抗命)’이라는 어휘가 한글세대인 지금의 독자층들에게 익숙해진 것은 새누리당의 유승민 국회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겪은 때문이다.가끔 스포츠뉴스에서도 쓰인다. 선수들이 감독 지시에 안 따르고 항명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주로 쓰이는 곳은 역시 정치권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2] 한국 정치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과제가 ‘집권 4년차’ 문제다. 대통령들이 임기 초와 다를 바 없는 국정 동력을 임기 후반까지 유지한다면 이런 문제가 생길 리 없다.그러나 1987년 개헌 이래,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당선 때 지지도를 퇴임할 때까지 유지한 사람이 여태 한 사람도 없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1] 앞서 1996년 10월1일의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를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에 비유했다. 이여송의 명나라 원군은 평양성까지는 탈환하고 군세가 위축됐다. 그러나 1996년 외환시장의 ‘명나라 원군’은 820원 회복도 못하고 하루 만에 모든 기세가 사라졌다.이 때 외환시장에는 ‘명나라 원군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30]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정하는 금리를 지금은 기준금리라고 부른다. 원래는 콜금리라고 불렀다.콜금리란 간단히 말해 콜(Call) 자금에 붙이는 금리다. 그럼 콜자금은 무언가. 쉽게 말해 하루만 돈을 빌리는 이자다.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펴는 대상 금리는 사실 하루짜리 이자를 조정하는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9] 국난을 맞아 혼자 힘으로 극복이 안 되면 외국의 도움도 받는 것이다. 유비가 조조의 대규모 남정을 막아내지 못하게 되자 손권의 도움을 받아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뒀다.그런데 1996년 서울 외환시장의 ‘유비’는 ‘손권’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8] 1995년 9월, 처음 산업은행 입행했을 때 내가 속으로 다짐한 것은 절대로 재수 없는 유학생이란 소리를 듣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이다.나는 스스로 ‘전통적’인 사람임을 자처해 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여름 학기까지 포함해 강의를 들었지만 수업시간에 반바지를 입고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7] 이번 회는 1997년 외환위기 얘기가 아니라 2016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업은행의 현안이다. 외환위기 당시 흐름을 따라가려는 독자들께서는 이번 회를 건너뛰고 다음 회를 읽어도 내용 전개에는 커다란 차질이 없다.산업은행 문제는 현재 금융차원을 넘어 심각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6] 그는 나와 같은 나이라고 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두 살이었다. 외화자금실장실을 들어서는데 노크도 없었고 한 손은 주머니에 있지 않았나 기억된다.외화자금실장은 부장급으로 50세를 전후한 나이였다. 연배가 스무살은 더 위인 사람의 집무실에 이런 식으로 들어서는게 매우 이색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5] ‘투기세력’이라 불리는 달러 매수자들이 1996년 8월14일 기습적으로 820원을 넘기면서 시장을 마감시킨 것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광복절 휴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진압’은 됐지만, 환율 수준은 확실히 올라가 있었다. 14일 이후 815원선을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4] 쇼트트랙 경기에서 막판까지 경합을 펼치는 선수가 결승점에서 한 발을 먼저 내밀어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외환시장의 ‘종가 관리’다.1996년 8월의 820원처럼 관건이 되는 환율 수준을 어떻게든 그날의 마감 시간에 지켜내는 방법으로 간간이 쓰였다. 주로 시장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3] 정치에 ‘여촌야도’ 현상이란 것이 있다. 여당은 촌에서 우세하고 야당은 도시에서 우세하다는 얘기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감정이 판을 치기 전에는 한국 정치에서도 꽤 들어맞는 얘기였다.정당들이 지역적 ‘텃밭’을 갖기 시작한 후에도 서울은 ‘여촌야도’가 지속됐다. 한마디로 여당이 맥을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