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설 땅이 없는 기업을 인수할 때 직전 경영진에게 경영책임을 묻는 것은 기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기업을 인수하고 난 뒤엔 기존의 문제 있던 임원들을 빼내고 능력 있는 새로운 경영진을 투입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대다수 인수기업들의 행태다. 그런데 대우건설은 참으로 이상했다. 대우건설의 주인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는
2012년 대우건설에 대한 각종 비리수사가 본격 진행되면서 새 주인인 산업은행이 궁지에 몰렸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명색이 정부 은행이 소유한 기업에서 각종 비리사건이 터져나온 것이다. 자연 산업은행의 출자회사 관리 능력이 도마위에 올랐다. 대우건설은 그러나 산업은행의 체면만 구긴 게 아니었다. 정부의 입장까지 난처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역
2012년9월13일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초이스경제' 기자와 만나 “산업은행 때문에라도 금산분리(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해야한다”고 밝힌 것은 뜻밖이었다. 여당 고위층까지 나서 국책은행의 개혁에 대해 서슴없이 말문을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이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주요 추진 인사이기도 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
필자가 새삼 이제 와서 산업은행의 문어발 확장과 낙하산 인사를 성토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그들이 부러워서가 아니다. 시기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신의 직장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다. 행여 그들이 저지를 지도 모르는 잘못된 유착관계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채권은행과 채무기업이 유착하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산업은행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일부 임원들은 쾌재를 불렀다. 퇴직 후 갈곳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KDB산은캐피탈 사장이나 대우증권 이사회 의장자리는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출신들의 몫이었다. 2012년에도 산은캐피탈 사장자리는 어김없이 산은 수석부행장출신에게 돌아갔다. 일반 부행장 급 이하 임원 및 간부들은 다른 출자회사 부사장자리
이명박 정부들어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공사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민영화 정책마저 표류하면서 은행자체의 위상은 크게 흔들렸지만 외연은 그렇지 않았다. 산은지주와 산업은행의 외연은 그 어느 재벌그룹도 따라 오기 힘들만큼 왕창 커지고 있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등 옛 대우그룹이 망하면서 떨어져 나온 대우계열사들을 책임지는 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산은금융지주, 즉 산업은행 민영화는 한마디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실패한 미완의 정책이었다. 시중은행을 인수해 민영화의 디딤돌로 삼아보려던 계획도, 우리금융지주와 합병해 메가뱅크를 만들어 보려던 방침도, 기업공개(IPO)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해 보려던 구상도 모두가 헛수고였다. 민유성 행장과 강만수 행장이 연이어 이 방안 저
2011년 3월 강만수 회장 겸 행장으로 수장이 바뀐 산은금융지주와 산업은행은 화끈했다. 조용하던 산업은행에 돌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획기적인 산은 덩치키우기 대책이 추진됐다. 당장 거함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말로만 나돌던 메가뱅크가 탄생할 지에 금융계의 눈길이 쏠렸다. 메가뱅크는 이명박 정부 초
2011년3월 민유성 행장에 이어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에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내려왔다. 비록 산은지주 회장을 겸하는 자리였지만 장관출신이 일개 은행장으로 오다니 의외였다. 그래선지 강 행장 인사는 시작부터가 시끄러웠다. 원래 산업은행장 자리는 차관급이 내려오던 자리였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때는 1급 출신의 자리로까지 위상이 약화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5년내내 산업은행은 갈팡질팡했다.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한다면서 산업은행을 정책금융공사와 분리해 반 토막 내더니 산업은행 수장의 호칭도 총재에서 행장으로 강등시켜버렸다. 산업은행장 기본 연봉도 1억6000만원수준으로 확 깎아버렸고 덩달아 임원과 직원들의 임금도 정체되거나 크게 오르지 못했다. 산업은행 임직원들은 민영화를 열망했다. 민영화만 되면
보험사들이 약관대출 늘리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사들이 약관대출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약관대출은 무엇보다 리스크가 없다.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다. 최근 초저금리상태속에 보험사 역마진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 대출
이명박 정부들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금융위원장만 전광우 진동수 김석동에 이르기까지 두번이나 바뀌었다. 금융위원장 임기가 3년으로 보장돼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장 자리는 정권 핵심 지역인 TK(대구 경북) 출신이 연이어 맡아서인지 임기를 남겨두고 처참하게 중도퇴진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부실 저축은행 구조
지난 11월4일 금융위원회 추경호 부위원장은 금융감독원의 최수현 수석부원장을 비롯한 금융감독원 임원들을 화급히 불러 모았다. 일요일의 긴급 준수뇌부 회동이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들은 휴일도 마다하고 머리를 맞대고 나선 것일까. 때늦은 만남이었지만 다행스런 회동이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두 기관을 향한 여론은 이미 최악을 향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왜 별거에 들어간 것일까. 두 기관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라도 한 것일까. 정녕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만 것일까.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빌딩에 얹혀 살던 금융위원회가 지난 9월22일 한강을 넘어 서울 광화문 프레스 센터 빌딩으로 이사하면서 두 기관 간 감정의 골도 더욱 깊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두 기관이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사이에 웃지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두 기관이 서로가 내 편이 되어달라면서 손님 끌어모으기에 나선 것이다. 그 손님은 다름 아닌 기자들이다. 한솥밥을 먹어야 할 두 기관이 별거에 들어간 뒤 자신들을 대변해 줄 출입기자들을 자기편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연인즉 복잡하다. 신문, 방송사마다 금융위원회
저축은행 비리 사태로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이후 금융감독원이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강화되면서 일처리가 지나치게 늦어졌기 때문이다. 검사에서 조치까지 무려 299일이나 걸리는 사례까지 나타난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 검사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한번 검사를 갖다 온 직원은 5일 동안 쉬도
2011년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선 ‘팀포수’라는 얘기가 유행어처럼 나돌았다. 팀포수란 금융감독원 직원중 ‘팀장이 되기를 포기한 나이든 수석검사역’을 일컫는 신조어다. 그것도 아주 자조섞인 신조어다. 수석검사역급 금융감독원 고참직원들이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줄줄이 사법처리되면서 터져나온 얘기다. 그랬다. 2011년은 금융감독원이 출범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한
1998년 통합 금융감독원이 출범하기 전 까지만 해도 모피아출신이 금융감독기관을 완전 장악하지는 못했었다. 금감원 출범 이전엔 금융관련 감독기관이 4개로 분리돼 있었다.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그리고 저축은행을 위탁 감독하는 신용관리기금이 그것이다. 과거 증권감독원장과 보험감독원장 자리는 모피아 출신이 독식했지만 은행감독원장 만큼은 한국은행
우리나라 금융감독질서를 어지럽힌 또 다른 세력은 바로 일부 엇나간 모피아(옛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출신 공무원 집단) 권력이다. 우리가 모피아를 무조건 욕할 수는 없다. 그들만큼 훈련이 잘된 행정가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자리에 모피아가 득세하는 건 참으로 잘못 된 일이다. 실력 없는 모피아 출신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금융권이 영남공화국이 아니듯
신한사태 2주년을 계기로 시작한 기획시리즈를 통해 지금껏 우리는 금융지주사의 허와 실을 대충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요약컨대 금융지주사제도는 그 제도상의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숱한 문제점들을 노출시켜 왔다. 때로는 금융지주사가 특정 금융인의 장기집권 수단으로 전락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지주사 회장 자리를 특정 지역출신들이 완전 싹쓸이하는 전유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