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62]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6)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의 원인들에 대해 지금까지 1994년 이후의 일들을 지적했다. 이 기간 종금사 난립과 같은 무분별한 정책에 미국이 금리를 두 배로 올리며 국제자금을 역류시킨 일이 겹쳤다.은행이 무조건 재벌에만 대출을 하려고 매달리던 것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61]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5)‘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1960~1970년대 고도성장에서 실물산업과 비교하면 금융부문은 사실 이렇다 할 기여도가 없다. 두 자릿수의 고도성장을 하는 경제에서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은행은 정해진 몇몇 회사에만 돈을 빌려줘도 충분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60]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4)어떤 사태의 원인을 지적할 때 조심스러워야 할 때가 있다.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다 보니, 책임을 지고 죗값을 치러야할 죄인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원인만 강조하는 것이다.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의 원인 가운데 국제적 원인을 얘기할 때는 이런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9]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3)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는 말 그대로 1997년의 위기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적인 진행은 1996년에 이뤄졌다고 나는 판단한다. 바꿔 말하면, 1996년이 IMF 위기를 막을 수 있던 마지막 기회였다고 본다.내가 ‘실패한 보초병’으로서 반성문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8]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2)노동법 파동이 정말 위기를 불렀을까?알리 다에이라고 하면 웬만한 축구팬이 모두 기억하는 이란 축구선수다. 특히 한국 팬들에게는 1996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전에서 4골을 넣어 2대6 참패를 안긴 선수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이 경기가 열린 것은 국회 ‘노동법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7]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1)2016년 초부터 연재하고 있는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는 아직 연재를 종료한 것이 아니다. 정기적인 연재는 2016년 한 해 동안 했지만, 그 후에도 새로운 취재나 공부를 하게 되면 그 때마다 간헐적으로라도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한시현의 실제 인물에 대해 앞선 기사에서 일부 언급했었다. (관련기사: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실제 인물은 누구?)대외 채무를 지급할 외화가 고갈돼 국가부도 위기를 가져오는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1997년 11월보다 8개월이나 앞선 3월초, 한보그룹 부도 직후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5] 외환위기가 1997년 11월 발생한 후엔 무역에 필요한 금융까지 모두 마비됐다. 한국에는 외화가 일체 들어오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조조정 차관으로 제공한 10억 달러 가운데 5억 달러를 받아서 무역금융에 투입했다.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이리저리 아끼고 쓰면서 버티다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4] 우정은 어려운 때 빛난다고 한다. 진정한 벗을 알아보는 건 고난에 빠졌을 때다.국가도 마찬가지다. 물론 국가 간에는 사람과 같은 우정은 없다. 각자의 국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때 나타난 구원의 손길을 절대 잊을 수 없다.반기로 전 파인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3] 반기로 전 파인아시아자산운용 대표는 원래 한국 금융공학의 선구자다.외환위기가 발생하던 1997년 초, 그는 산업은행 외화자금부에 신설된 금융공학팀의 초대 팀장을 맡았다. 당시 직급은 부부장이었다.그러나 당시 한국 은행권의 현실적 제약 때문에 금융공학 업무뿐만 아니라, 외화자금부의 통상적인 자금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2] 지금부터 9년 전인 2008년, 당시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새롭게 등장한 용어가 ‘강남좌파’다. 보수성향의 정부를 좋아할 것 같은 형편에서 살면서 반정부 성향이 강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일부에서는 ‘먹고살 걱정 없는 사람들이 지적 유희로 진보행세를 하는 것’이라고 무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1] 경제 위기에 빠져 있던 그리스에 지난 2015년 좌파 정부가 집권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그리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등 채권단과 채무불이행 갈등을 한껏 고조시켰다.유로단일통화를 볼모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그리스는 앞서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모범생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0] 한보 사태가 진행되고 김시형 산업은행 총재는 아직 거취를 표명하기 전의 일이다.은행 노조가 총재 퇴진을 촉구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한보 사태가 나기 1년 전쯤 선거를 통해 강성 노조로 바뀌어 있었다. 이 노조가 첫 번째로 주력한 것은 1996년 봄의 임금협상이다. 파업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9] 내가 산업은행을 다니는 동안 총재를 지낸 김시형 씨는 인상부터 ‘귀인지상’의 용모를 갖췄다. 당시 행원들끼리의 수다에서 워낙 유복하게 자라 돈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그가 은행 총재에 취임하기 직전, 산업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전임 총재가 오직사건으로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8] 한보와 기아의 부도는 비슷한 때 벌어진 일로,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가 마침내 폭발한 계기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 위험요인이 가득했던 한국 경제에 기폭제가 됐다는 얘기다.그러나 한보와 기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단적인 예를 당시의 언론 보도가 전하고 있다. 외국계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7] 내가 은행에 들어온 지 1년 5개월쯤 지난 1997년 3월, 처음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인력이탈이 더 이상 은행에 충격이 아니라는 점이다.특히 외화자금실 인력들이 외국계 기관과 당시 한참 기세를 올리던 종금사 쪽으로 옮겨가는 일이 간간이 생겼다.김문수 씨(현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6] 이른바 ‘IMF 위기’라고 하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토론할 때 어려운 점은 단 하나의 최대원인을 찾기다.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어떤 것이 핵심이냐는 거다. 예를 들어, 종금사 사태를 최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면, 만약 1996년을 전후해 무더기 종금 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외환위기가 안 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5] 지금은 어른이 된 조카들이 꼬마 시절, 내가 나름대로 비추천만화로 지정한 것이 있다. ‘라이온 킹’이다. ‘삼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에서다.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선물까지 했으면서도 이 만화를 보고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이 만화의 악당인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4] 저쪽 팀에 시속 16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있다. 직구가 워낙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그는 변화구를 던지는 법도 없다.체력마저 좋아 마운드에 그제도 오르고 어제도 올랐다. 보나마나 오늘도 또 오를 것이다.그의 강속구에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는 타자들을 보면서도 감독은 한 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3] 이 시리즈를 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기록의 부재다. 2004년쯤 산업은행 자금거래실을 방문해 내가 썼던 원달러일기를 찾으려 한 적이 있다.그러나 앞서 밝힌 것처럼, 나의 원달러일기는 공식적인 결재절차를 밟아서 쓴 것이 아니라 내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조금이라도 고객기업들에 도움이 되려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