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인수-메가뱅크 -IPO잇단실패..산은 5년 소리만 요란했다

 2011년 3월 강만수 회장 겸 행장으로 수장이 바뀐 산은금융지주와 산업은행은 화끈했다. 조용하던 산업은행에 돌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획기적인 산은 덩치키우기 대책이 추진됐다.

 
당장 거함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말로만 나돌던 메가뱅크가 탄생할 지에 금융계의 눈길이 쏠렸다. 메가뱅크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자주 등장했던 용어이기도 했다. 은행의 덩치를 확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업무도 다변화해 글로벌 스타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메가뱅크 추진론자들의 목소리였다. 그 중심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었다. 금융부문에서도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스타를 만들자는 얘기였다. 우리금융지주와 국책은행을 합치면 어려울 것도 없다는 얘기가 더해졌다.
 
이명박 정부 경제철학인 MB노믹스를 이끌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내려오면서 메가뱅크이슈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산은금융지주가 우리금융지주 인수 의향을 나타낸 것이다. 금융위원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손질을 추진하고 있었다. 금융지주사가 타 금융지주사를 인수할 때 지분매입 조건을 ‘현행 95%이상’에서 ‘50%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작업만 이뤄지면 산은지주의 우리지주 인수도 수월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뿐 이었다. 정치권의 반발이 너무나 거셌다. 야당이 더 반대했고 여당도 찬성하지 않았다. 여야 모두 메가뱅크는 강만수 행장을 위한 일자리 창출일뿐이라고 비꼬았다. 청와대와 정부가 강만수 행장의 메가뱅크 복안에 지원사격을 해 주었지만 정치권이 협조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정치권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메가뱅크 탄생에 필요한 금융지주사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정치권이 반대하는 이유는 자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들은 민영화가 당면 과제인 산은지주가 우리지주를 인수하게 되면 민영화가 아니라 덩치가 더 큰 국책은행을 만들어버리는 꼴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여당인 이사철 의원조차도 “산은지주가 우리지주를 인수하면 민영화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걱정했다. 같은당 조문환 의원 역시 “우리지주를 분리매각하는 것과 산은지주에 붙여 매각하는 것을 두고 어느 방안이 공적자금 회수에 유리한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몰아붙였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도 금융위 시행령 개정추진은 산은지주의 우리지주 인수 길을 터주려는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의 시행령 개정은 강만수 회장 겸 행장을 지원하기 위한 특혜라고도 몰아세웠다.
 
메가뱅크 반대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들려왔다. 김석동 위원장이 금융지주사법 시행령을 손질하려 하자 김 위원장을 아끼는 모피아들도 가슴을 조렸다. 강 회장을 비판하는 정치권이 김 위원장까지 싸잡아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그 무렵 필자는 모피아 고위직출신, 그리고 금융위원회 현직 간부와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 금융위원회 간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 간부는 가뜩이나 저축은행 구조조정 문제로 금융위원회가 눈코 뜰 새 없는데 메가뱅크 불똥까지 튈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요즘들어 하도 리스크가 큰 일들을 많이 하다 보니 가슴이 조마조마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나중에 행여 불이익이 뒤따를까봐 매일 일기를 쓴다고도 했다. 저녁자리에 함께 했던 다른 모피아 출신들의 걱정도 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금융위 간부를 향해 메가뱅크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듯한 김석동 위원장을 말려야 한다는 말도 전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자 산은지주의 우리지주 인수시도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나중에 우리지주와 KB금융지주를 합쳐 메가뱅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왔으나 힘을 얻지 못했다.
 
우리지주 인수가 어려워지자 강만수 행장은 기업공개(IPO)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산은 민영화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했다. 강 행장은 다만 산업은행을 맡으면서 민영화에 조건부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에 지분 50%이상을 파는 식의 산은민영화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고도 전했다. 산은 민영화를 뒤로 미루고 IPO추진에 나섰다고 했다.
 
그는 2012년 10월 국회 정무위의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대주주로 있고 경영은 자율적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경영방식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고 했다. 커머셜 뱅킹(상업은행) 부문을 확대해야 은행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의견도 펼쳤다. 산은이 개인, 상업금융의 기반을 쌓을 경우 세계적인 은행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도 했다. 산은 민영화를 하지 않는 대신 경영 효율성을 키우고 자본력을 확충하는 차원에서 기업공개를 통해 지분 10%를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개진했다.
 
하지만 강행장의 IPO추진 역시 순탄치 못했다. 산은 IPO는 여야 합의로 개정된 산은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지만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찬성하지 않고 있었다. IPO를 추진하려면 산은 대외채무 정부보증에 대한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있었다. 국회가 찬성하지 않았고 야당과 함께 금융노조가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강 행장은 개탄했다. 경제문제가 정치의제로 변질되면서 정책추진이 어려워졌다며 아쉬워했다. IPO는 여야가 마련한 산은법에 근거를 두고 추진한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니는 것이라고도 했다. 산은 IPO 반대는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리자는 억지라고 했다.
 
강행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민유성 행장에 이어 힘있는 강만수 회장이 내려와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었다. 민유성 행장때는 금융정책당국의 비 협조로 산은 민영화가 제자리 걸음을 하더니 강만수 행장때에 이르러선 힘은 있었으나 정치권과 금융노조의 반대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 기간내 IPO추진마저 무산되면서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분리된 정책금융공사도 어정쩡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에선 산은이 IPO를 포기하고 정책금융공사를 산은과 다시 합쳐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강 행장 자신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의 산은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합치고 산은금융지주도, 산은 개인금융부문도 모두 없애야 한다며 허탈해 했다. 나중엔 대우증권과 KDB생명 등 자회사까지 정리하라는 금융권 안팎의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은의 고민은 여기가 끝이 아닌 게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산은으로선 유력 대선후보 모두 메가뱅크나 산은 민영화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게 더 큰 걱정이다. 다음 정부에서도 산은 민영화는 쉽게 추진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길을 잃은 산업은행을 궁지에서 구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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