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김의태기자]-한국인 형제가 공동 3위를 수상한 국제콩쿠르는?

▲2005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5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이 콩쿠르에서 임동민·임동혁 형제가 2위 없는 3위에 공동으로 올랐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도 제법 친숙해졌다.

피아노의 시인인 쇼팽을 기리기 위해 그의 조국 폴란드가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주최하는 이 콩쿠르는 가장 권위있는 국제피아노경연대회로 명 피아니스트들의 산실 역을 한다.

제 10회때인 지난 1980년 10월 손 아무개라는 한국계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했다는 소식에 흥분한 국내 음악계가 술렁였다.

그 직전 대회인 75년에 크리스티안 짐머만, 그 이전엔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그리고 직후인 85년엔 스타니슬라브 부닌 등 훗날 세계적 에트왈(스타)이 된 이들이 우승을 했던 콩쿠르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곧 오보임이 밝혀졌다.

▲ 당 타이 손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당 타이 손이라는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였다. 당 타이 손을 손 아무개라는 한국계 연주자로 착각한 사람이 성급히 전했던 것이다.

당 타이 손은 화제의 인물이 됐다. 오랜 전화에 시달린 베트남 출신인데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했을 뿐 아니라 3개의 특별상(폴로네이즈상, 마주르카상, 콘체르토상)까지 휩쓸어 일대 파란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또한 그의 우승을 둘러싼 소동은 두고두고 얘기가 됐다. 유고슬라비아 출신 이보 포고렐리치가 3차 예선에서 탈락하자 그를 밀었던 아르헤리치가 화가 나 심사를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대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르헤리치는 남미출신답게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상체를 약간 숙이고 피아노를 연주하면 긴 머리가 얼굴을 가리는데 마치 사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대선배인 빌헬름 박하우스가 ‘건반위의 사자’로 불린 터라 그녀에게는 ‘피아노의 여제’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그런 여파로 당 타이 손은 우승자이면서도 국제무대에서 한동안 포고렐리치에 치여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 타이 손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주자로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91년 카나다로 이주해 제2의 음악인생을 시작하면서 가장 쇼팽다운 피아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교사인 어머니의 지도로 피아노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베트남 전쟁통에 피아노가 없어 종이에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후에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테크닉보다는 진지한 표현으로 그의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 음악컬럼니스트는 “그의 연주는 서정미가 정말 빼어나다. 남자의 피아노 터치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섬세할까 싶을 정도”라고 평했다.

전쟁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그가 56세의 무르익은 연륜을 맞아 한국을 방문, 23일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선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전주에 이어 과감하게 바로 피아노 독주에 들어가는 멘델스존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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