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고객센터 직원들이 전하는 별별 얘기

우리는 하루 백여 명 안팎의 고객들과 만난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수 만명의 문의를 해결해주다보니 나는 이제 요구사항을 듣자마자 장황하게 늘어놓는 고객의 설명 속에서도 핵심을 콕콕 집어내는 쪽집게가 되어있었다.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지자 고객에게 맞춤상담을 할 수 있게되었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꾼이 되어있었다.

키움증권은 지점이 없는 온라인 증권사인만큼 종류를 불문하고 쏟아지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 고객만족센터 직원은 전체 업무를 다 알아야 한다. 상담사 하나하나가 지점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국은 물론 해외에 거주 중인 다양한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어느고객은 말솜씨가 개그맨 뺨치는 경우도 있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고객은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들은 어떤 스릴영화보다도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든다.

물론 예민해져 있거나 주문이 까다로운 고객을 만날 때면 힘들지만, 좋은 고객들도 무수히 많다. 안내를 받고나서 너무 고맙다며 본인이 아는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거나, 필요한 프로그램 설치과정에서 기다리는 동안 좋은 시가 있다며 읊어주기도 한다.

"OO종목이 대박날 거야"라며 아가씨도 꼭 사보라고 추천해주시는 경우도 있다. 동료 직원 중 한 명이 한 고객으로부터 종목을 추천받았었는데 그게 40배가 올랐고, 고객은 40억대의 주식부자가 되셨다. 직원은 "고객의 말은 역시 경청해야 한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일을 하는 동안 더욱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에 즐겁게 일한다.

PC를 다루는 데 서툴렀던 중년의 남성 고객이 있었다. 인증서 발급과 프로그램 설치를 해주며 이용방법까지 안내하다 보니 어느새 한시간 째 통화하게 되었다. 그러자 고객은 본인 자녀들도 귀찮고 성가시다며 안해주는데 아가씨가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끝까지 감사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운동할때 보라매공원에 자주 나온다며 직접 센터에 찾아와 맛있는 간식거리를 선물로 사주고 가셨다.

좋은 기억이 있는 또 다른 고객은 40대 중반의 아주머니였다. 공인증서 관련 문의였다. 인증서 문의는 어느때나 절차가 까다로워 시간이 좀 걸렸다. 다 안내하고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고객께서 "바쁜데 전화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너무 정중해서 당황스러웠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고객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몇시간간 동안 헤맸어요. 정말 답답하더라고.. 아가씨는 본인 직업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엄청 고맙네요. 난 자식도 같이 안살아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거든. 아가씨 덕분에 빨리 끝났어요. 본인이 얼마나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지 모르죠? 본인과 본인 직업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세요. 참 좋은 일 하네."

하루종일 무시당하고 실수하면 질책당하던 중에 이런 고객과 통화하자 나도 모르게 황송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 감사합니다.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넨 채 전화를 끊었지만 그 여운은 한참이나 가시지 않았다.

다른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만 생각하고, 정작 내 자신은 어느 순간 월급 받고 당연한 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기계처럼 일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동안 나도 고객에게 아무 감정없이 안일하게 대할 때가 많았다. 이 고객과 통화한 후부터는 의미 없이 지나갔던 고객들이 다르게 보였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했을까. 얼마나 화가 났으면 나에게 전화했을까. 그 때부터 나는 더욱 내 직업을 사랑하고 고객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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