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선수들 간 주먹다짐이 가장 ‘제도화(?)된 건 미국의 프로 아이스하키일 것이다. 충돌 상황이 발생하면 당사자끼리 한주먹 교환할 때까지 심판은 차라리 지켜본다. 상황이 끝나서야 퇴장 명령도 내리고 경기장 질서를 회복한다.

서부 개척시대 같은 아이스하키 경기에도 하나의 중요한 룰이 있다. 무력 충돌 상황이 되면 우선 스틱부터 내려놔야 된다. 싸움질에 도구를 동원하는 것은 경기의 룰을 떠나 법률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도구를 쓰는 종목이라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야구가 있다.
 

▲ "누군 맞추고 싶어 맞추는지 알어?" 1993년 놀란 라이언과 로빈 벤츄라의 충돌은 투수가 타자를 가격한 특이한 장면이다. 벤츄라는 라이언의 투구에 맞은 후 1루에 나가려다가 갑자기 마운드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당시 46세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이 눈앞에 들어오자 26세의 벤츄라는 돌진을 멈추고 격렬하게 따지기만 했다. 오히려 라이언이 단 번에 벤츄라에게 헤드락을 걸고 펀치를 날렸다. /사진=MLB 유투브 화면캡쳐.

 

프로야구 역사가 33년이 되도록 많은 벤치 클리어링이 있었지만, 배트로 상대 선수를 가격하는 일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런 점이 하나 있다면, 첫 해나 지금이나 가끔씩 배트가 불만을 상징하는 소품처럼 쓰인다는 것이다.

1982년 후기리그 MBC청룡과 해태타이거즈 경기다. 화끈한 공격력과 많은 팬을 가진 두 팀의 경기 중반 갑자기 1루수와 1루 주자 사이 소란이 발생했다. 마침 이름이 비슷한 두 선수였는데 한 선수는 다음 해 이름을 바꿨다. 양 팀 선수들도 모두 쏟아져 나왔는데 한 선수는 배트를 들고 덤벼들었다. 아마야구 시절부터 빠른 발을 가진 국가대표 외야수로 명성을 떨친 선수였다. 물론 그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주위 다른 선수들에게 자신을 막을만한 충분한 시간을 줬다.

그러나 아마야구와 달리 이제 많은 팬들이 TV로 시청하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대단히 불미스럽고 폭력적이며 위협적인 장면이었다. 국가대표로 칭송받는 선수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에 충분했다.

수년 후에는 명문대 야구 경기에서 한 선수가 배트를 위협적으로 휘둘러 관중들이 경악하는 일도 있었다.

배트 뿐만 아니다. 올해는 프로야구에서 상대 선수에게 공을 날리는 행위도 있었다.

팬들의 성원만큼은 다른 종목 선수들의 질투를 사기에 충분할 만큼 성장한 프로야구다. 그런 종목에서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팬들에 대한 배신이다.

벤치클리어링은 야구 경기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야구 배트가 공격용 또는 위협용으로 쓰이는 것은 야구 경기의 차원을 벗어난다. 관련 당국이 사법처리를 해야 마땅한 폭력행위다.

야구인들도 이제 ‘불문율 중의 불문율’로서 정립해야 할 것이 있다. 축구 농구에는 필요 없고 야구와 아이스하키처럼 도구를 쓰는 종목에 꼭 필요한 것이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충돌이 있게 되면 즉시 손에 쥐고 있는 도구부터 내려놔야 한다.

이것은 프로야구가 출범 후 한국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의 시민의식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효과를 살펴봤을 때 더욱 절실하다.

이 원칙이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해서 14일에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 기아타이거즈의 박정수가 LG트윈스 정성훈을 맞춘 후 당혹해하고 있다. /사진=다음 SBS화면캡쳐.

 

기아타이거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벌어졌다. 양 팀이 1대1로 맞선 7회 LG가 투아웃 2루의 득점 기회를 잡았다. 타석에 이번 시즌 LG 베테랑들의 ‘군계일학’인 정성훈이 등장했다. 이날까지 타율 0.331을 기록 중이다.

정성훈 상대를 위해 기아 김기태 감독이 아끼는 고졸신예 박정수가 등장했다. 아이돌 가수 같은 앳된 얼굴로 공이나 던질까 싶은 용모지만 6일전 2,3루 위기에서 무시무시한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은 선수다.

박정수의 등판 후 첫 공이 정성훈의 종아리를 맞혔다. 공에 맞은 정성훈이 타석의 앞쪽으로 몇 걸음 나갔다가 1루로 방향을 잡았다. 주심이 심상치 않은 정성훈의 기색을 알아채고 급히 다가와 몇 마디 건넸다.

공도 던지기 전부터 땀을 뻘뻘 흘리던 박정수는 모자를 벗고 ‘대선배’에게 사과를 하면서 안절부절했다. 이 공 하나만을 던지고 박정수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1루에 나간 정성훈도 대주자로 교체됐다.

앳된 후배 박정수에게 대고참 정성훈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며 기를 죽일 이유가 뭐냐는 지적도 있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 여기는 오로지 실력으로 대결하는 프로야구 현장이다.

공 던진 투수는 나이가 어릴지 몰라도 타자 몸을 맞춘 공에는 나이가 없다. 무수한 부상을 이겨가며 지금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정성훈에게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몸에 맞는 공’은 하나도 없다. 굳이 ‘대선배’의 도리를 적용시킨다고 해도, 이제부터 ‘몸이 재산’인 상대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주는 것도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대표 3루수로도 활약했던 정성훈에게 대단히 아쉬운 점이 있다. 공에 맞고 투수를 향해 두어 걸음 옮길 동안 배트를 쥐고 있었다. 배트는 맞고 난 후 바로 내려놓고 차라리 투수 쪽으로 한 발짝 더 가는 편이 나았다. 정성훈은 투수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분명한 의도를 보였다.
 

▲ 몸에 맞은 정성훈이 1루로 나가는 과정에서 마운드 방향으로 몇걸음 옮기자 주심이 다급히 그에게 접근하고 있다. /사진=다음 SBS스포츠 화면캡쳐.

 

1983년 뉴욕양키스의 강타자 데이브 윈필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제쳐 피했다.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윈필드는 두 말 안하고 마운드를 향해 돌진했다. 배트는 이미 내려놓은 뒤다. 포수가 윈필드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쫓아왔지만 그의 배터리 짝은 윈필드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종목에 ‘따끔한 교훈을 주려면 우선 맨 손으로’라는 철저한 불문율이 확립돼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시청률도 가장 높고, 또 어린이들에게도 가장 쉽게 접근하는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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