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고객센터 직원들이 전하는 별별 얘기

내가 보기엔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날은 아무래도 수요일인 것 같다. 물론 ‘월요병’이라는 말도 있듯이 직장인들은 월요일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사실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가장 피로한 때는 일주일의 한 중간인 수요일인  것 같기도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깐깐한 고객에게 잘못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집에 가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힘든 어느 수요일 오후에 나이 지긋한 남성과 통화를 하게 됐다.

컴퓨터에 서툰 고객이었다. 거래 프로그램이 이상하다고 해서 고객의 화면을 보며 진행하려고 했는데 몇번의 설명끝에 힘들게 연결에 성공했다. 신속히 오류에 대한 조치를 했더니 정상적으로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다른 문의사항 없으십니까?”하고 묻자 갑자기 고객은 “아가씨 미안한데 내 컴퓨터 한번만 봐주면 안돼?  요새 자꾸 이상한 것들이 뜨고 속도가 느려져서...”라고 했다. 흔쾌히 알겠다고 하고 바이러스검사를 시작했다.

보안프로그램을 통해 열심히 들여다 보았으나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다른 문의전화는 밀리고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추후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할아버지인 고객은 이왕 하는 거 좀 끝까지 해주면 안되냐고 하신다.

그러면서 심심하면 라디오를 들려주시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니, “고생해서 어떡하느냐, 일이 힘들지는 않느냐”며 염려까지 해 주신다. 생각해주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니 이번에는 “몇 시에 출근해서 몇시에 퇴근하느냐, 나같은 컴맹 만나면 힘들지 않느냐, 이번에 대통령 누구 뽑을거냐”는 등 개인적인 물음에서부터 정치성향, 예전에 젊었을 때 겪었던 일들을 얘기해주셨다.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바이러스 검사 때문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귀찮기도 했지만, 함께했던 할아버지표 토크쇼 덕분에 편하고 즐겁게 통화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 전에 무서운 할아버지 고객들을 만나면 호통부터 치고, 잔소리만 많아서 나이든 분들은 답답하고 막혀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도 치료해주고 "노인네 말동무까지 해줘서 고맙다"고 칭찬해 주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그날은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사리분별한 고객도 있었는가 하면, 조금은 뻔뻔했던 고객도 있다. PC에 문제가 있어 좀 봐달라고 하기에 그 부분은 전문수리업체로 문의하시라고 권유하니, 비용이 들기 때문에 우리더러 해달라고 명령조의 부탁을 했던 고객도 있다. 게다가 “OO버튼을 누르시면 OO가 뜨십니다”하고 설명하니 내게 사물존대어를 하지 말라며 맞춤법 강의를 하기도 했다. “‘뜨십니다’가 아니라 ‘뜹니다’라고 해야죠. 따라해보세요 ‘뜹.니.다’!!”

반대로 어떤 고객은 컴퓨터에 대해 너무 잘 알아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PC에 에러메시지가 자꾸 뜬다며 해결방법을 문의했던 고객이었다. 하지만 고객이 자신의  PC에 연결하는 건 원치않아 전화상만으로는 문제를 파악하기가 곤란했다. 게다가 고객은 알아들을 수 없는 컴퓨터 전문용어를 계속 쏟아내는바람에 40분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컴퓨터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아가씨 컴퓨터에 대해 알아? 모르면 떡이나 먹어!”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황당했지만 떡이나 먹으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컴퓨터에 대해 잘아시는 분이 왜 나에게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했는지 의문스러웠다.

예전에는 이런 일들이 당황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이따금씩 내게 웃음을 선사하는 이런 엉뚱한(?)고객들을 만나는 게 수요일같이 피곤한 날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한분씩 대하다 보면 힘들게 하는 고객보다 훈훈하고 기분좋게 전화를 마칠 수 있는 고객들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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