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는 최대 성공 캐릭터 가운데 하나다.

배우 박혁권이 연기하고 있는 이 인물은 첫 회에서 과연 저래가지고 사극에서 살아남을까 싶은 ‘과한’ 화장과 성 정체성이 모호한 말투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러나 16회가 지난 지금 상당수 시청자들은 그가 다음 주 17~18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정도로 '사랑 받는 악역(?)'으로 자리 잡았다. 미움을 받아야 되는데 대장금의 한상궁 마마님 같은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인물이 돼 버렸다.

코믹한 면이 많으면서도 주인공들에게 감시의 눈초리와 칼날을 들이밀 때 극의 긴장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간혹 대사가 길게 늘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는 이 드라마에서 길태미 만큼은 짧게 짧게 끊는 그의 한 마디가 모두 정곡을 콕콕 찌른다. “사돈, 나 살인 암살 이런 거 되게 좋아하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류의 대사는 엽기성 해학을 항상 동반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인물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은 것은, 현실 속에서 만났을 때는 그렇게 나쁜 정도가 아니라, 꽤 괜찮은 직장 상사일 것 같기 때문이다.
 

▲ SBS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 /사진=SBS 홈페이지.

 

길태미는 가공인물이지만, 임견미라는 고려 말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지난해 KBS 사극 ‘정도전’에 나온 임견미다.

‘정도전’에서의 임견미는 사악한 직장상사 그대로였다. 탐욕스럽고 공을 가로챈다. 왜구 토벌 때 이성계를 지휘하는 상원수라는 옥상옥으로 나가 모든 공을 자신이 가로채고, 완전한 소탕도 못하게 가로막았다. 거기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고 오로지 파벌의 수장 이인임에게만 아첨할 뿐이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는 무술의 당대 최고수라는 점과, 여성스런 화장 및 말투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성격을 가미해 탁월한 조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임견미의 미운 털 박힌 측면을 제거했다. 아랫사람의 공을 가로채는 못된 성격을 빼 버리고 “잘하셨습니다” “어쩜 일처리가 이리 완벽하실까”라는 감사함이 가득한 마음을 채워넣었다.

거기다 남성 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장 강한 남자이면서도 승부에 대한 담백함도 갖췄다. 강한 자를 깔아뭉개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존중한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임을 알았을 때 먼저 칼을 거두는 무사의 자비까지 지니고 있다. 6룡의 하나인 무휼을 선제공격했다가 찾는 상대가 아님을 알고 “옷을 왜 그렇게 입고 다녀”라는 타박으로 싸움을 접는 장면이 그렇다.

또한 한 때 사기꾼같은 선생 홍대홍 밑에서 공부했다던지, 동갑 홍륜한테 설움 받은 과거를 간간이 시청자들에게 털어놓아 “고생 꽤 많이 했구나”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그에게 이제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는 듯 하다. 아무리 ‘팩션’ 드라마라도 사극인 이상, 역사의 흐름만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반의 역모를 조작했다가 이인임·임견미·염흥방 일당이 최영·이성계의 반격으로 패망한 일이 다음 주 ‘육룡이’ 버전으로 방영된다.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홈페이지에 ‘길태미를 살려주세요’라는 청원을 넣고 있고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길태미 구명운동본부’까지 만들어 놓고 있을 정도다.
 

▲ '육룡이 나르샤' 홈페이지의 시청자 의견만 보면 길태미는 '대장금'의 한상궁 마마님 같은 착한 역할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사진='육룡이 나르샤' 홈페이지.

 

길태미는 어디까지나 가공 인물인 이상, 살아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는 오로지 드라마의 창조주인 감독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어찌됐든, 모티브가 된 임견미와 달리 길태미가 시청자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게 된 것은 약자에게 약한 심성을 가진 ‘감사함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로부터 호감 사는 상관이 되고 싶을 때 꼭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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