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사진 출처=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2004년 6월, 박승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인하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황당하다”고 대답했다. 두 달 후, 박 총재는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중앙은행 총재 발언은 금융시장에서 경제지표와 마찬가지로 여긴다. ‘황당하다’는 표현은 반년 정도 금리 내릴 일은 없을 것이란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겨우 두 달 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여러 가지 추측들이 많았다. 회의 직전, 박 총재가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를 만났다는 소식도 있었다. 또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5% 성장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로 금융통화위원 중에 ‘이헌재 사단’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 많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헌재 사단’이라고 분류된 사람 중 하나는 오히려 금리 인하 반대 의견을 남긴 것으로 나중에 의사록에서 확인됐다.

황당하다는 일을 스스로 했다는 이유에서 많은 기자들이 박승 총재를 비판했다. 기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 때 뿐만 아니다. 갈팡질팡하는 통화정책이란 글을 쓸 때마다 여러 번 이 때 일을 거론했다.

몇 번은 “미국이나 일본 중앙은행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런 언행의 일부에 대해 박승 총재에게 뒤늦은 사과를 전해드린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주만 해도 마이너스 금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불과 1주일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결정을 했다. 1주일이란 점에서 ‘죄질(?)’이 박승 총재보다 더욱 무거울 수 있다. 5 대 4로 결정된 정책이라고 하니 구로다 총재가 5의 하나인지, 4의 하나인지는 모르겠다.

박승 총재는 재임 중 숫자에서 밀려 원하지 않는 금리 인하를 한 적도 있다. 얼마나 한심한 지경이었는지 이성태 당시 부총재(박승 총재의 후임 한은 총재)가 의사록에 반대 의견을 남길 정도였다. 개별 위원도 아니고 정책부서를 이끄는 부총재의 반대 의견은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혹시 이번 일본은행도 이런 경우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은행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이 11년여가 지나 밝혀진 것이다. 이 부분만큼은 박승 전 총재가 억울할 일이니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미국에서도 상상 못할 일은 아닐 거 같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어느 날 심기가 매우 불편하면 ‘내일 회의 때 뭔가 확 뒤집어버려?’라는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상은 자유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당시 그러한 신뢰를 저버리는 정책 결정을 비판했던 것은 지금도 옳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둔다.

아직 미국의 Fed 의장들은 이렇게 단기간에 자기 말 바꾼 적이 없지 않은가.

설령 Fed 의장까지도 자기 말을 뒤집는 경우가 온다 한들, 그 때는 이미 금융을 비롯해서 세상이 뒤죽박죽이 돼 있을 터이니 일개 서생의 박승 총재에 대한 옛날 비판이 대수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의 금융당국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과연 옳은 생각인지 이번을 계기로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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