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김용기 칼럼] 내가 문화재단 사장을 맡은 후 감사해야 할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하는 문화사업을 돕겠다는 지원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나 또한 문화 사업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주위 분들에게 원칙을 지키려 노력해왔는데, 이에 대한 보답의 성격도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다.

문화 사업도 엄연한 하나의 사업인 이상, 예산과 자금의 제약을 받을 때가 많다. 문화 사업이라고 해서 줄 돈을 안줘도 되는 것이 아니다. 줄 돈 주고 받을 돈 받아가며 제대로 된 사업을 영위해야 문화 사업도 번창해질 것이라는 게 내가 갖고 있는 나름의 철칙이다.

특히 줘야할 돈이 있다면 어떤 다른 일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문화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철칙을 갖고 있는 내게도 고민이 생겼다. 내가 맡고 있는 문화재단의 공연장 시설이 10년을 넘기다 보니 많은 것들이 낡아 있었다. 리모델링이 시급한 상황이다. 무대, 음향, 조명 등 많은 것들을 다시 장만해야 한다. 카펫과 문도 다시 손을 봐야 한다. 예산이 족히 20억 원은 들어가야 할 상황이다. 난감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뜻밖의 지원자가 생겨났다. 우리의 사정을 알아차린 한 분이 공연장 의자 300개를 기증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의자의 품질도 너무 좋았다. 기증문서를 받고 보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걸림돌이 있었다. 관공서의 ‘절차와 행정’이다.

공연시설은 최근까지 구청 산하 시설관리공단이 관리했다. 의자를 기증받았는데 설치할 수 있는 기간은 나흘뿐이었다. 공연 일정이 없는 기간에 설치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유관기관 협조를 구하려다 보면 보름은 걸릴 상황이었다.

일단 공사부터 시작했다. 절차와 행정 때문에 고마운 기증품을 뿌리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조명시설과 더불어 공연장 커튼도 기증받았다. 또한 유명한 조각가의 지인으로부터는 조각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됐다.

나 또한 예술 사업을 20년 넘게 해왔다. 많은 업체와 거래하면서 10원 한 장 외상한 적이 없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영위했던 개인사업체에는 외상 장부가 없다.

만약 회사로 “입금 왜 안 합니까”라는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담당직원한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엄명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이렇게 지내오다 보니 지금은 내가 도움을 받는 상황이 됐다. 이는 나한테도 복이지만 우리의 문화계에도 다행스런 일이다.

이제 문화 사업도 '윈-윈'이라는 사업논리를 적용해가며 제대로 일으켜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 글을 감히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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