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의 경제칼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그만한 심성과 재능을 갖추게 마련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두둔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팔불출이 아닌 범부의 눈치로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뻔히 아는데, 이 정도 지위 사람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탄을 받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절대 모르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문제인지 남보다 더 잘 알면서 한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을 비롯해서 일개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은 현실과 소신이 마찰을 일으키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자신의 소신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온 소신이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았다면, 직무를 수행할 때도 그 소신을 지켜야 마땅하다.

현실과 다른 자신의 소신은 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이것은 두 가지 경우다.

자신이 잘못됐거나 현실이 잘못됐거나다. 전자의 경우는 스스로 고치거나, 남에 의해 강제로 퇴진당하는 식으로 해결된다.

후자의 경우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원칙으로 따지면, ‘죽기를 각오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청소년 역사책에나 나오는 혼군과 충신의 전설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이렇게 단순한 선악의 구도가 아니다.

이럴 때 사람은 ‘언젠가는 바로 잡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남겨둔다. 이 ‘희망’의 제일 큰 용도는 지금의 현실과 타협하는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머리가 남달리 뛰어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니 머지않아 그 또한 근거 없는 희망사항이었음을 깨닫는다. 길은 오직 하나다. 자신과는 길이 맞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물러나는 것이 ‘선비’의 도리다.

그러나 이 때, 또 하나 최후의 방어보루가 등장한다. ‘백보를 양보해서라도’ 이 자리를 지켜야하는 필요성이다.

“나 하나 물러나는 것은 간단하지만, 내가 이렇듯 중도에서 퇴진하면 이것이 안 좋은 사례를 남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머리도 남달리 뛰어났던 사람이 역사적으로 한심한 일에 자신의 이름도 함께 남기게 된다.

1980년대 이전의 전해지는 얘기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성 평등 의식이 약할 때다.

어떤 국가기관의 수장은 수시로 교체가 됐는데 유독 한 사람이 임기를 지켰다. 그 사람의 별명이 ‘미스 X’였다고 한다. 윗선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기 때문에 임기를 채웠다는 쓴 소리가 담긴 별명이다. 이 기관에서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사례로 여기지도 않는다.

길이 아닐 때, 뜻을 굽히지 않고 차라리 물러나는 길을 택해 세상이 바로 잡혔을 때 큰 교훈을 남긴 사례는 흔하지는 않아도 간간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임기조차 채우지 못했는데도 불멸의 존재감을 남기고 있다. 이로 인해 훗날 더 큰 일을 맡기도 한다.

사람이 어두운 숲을 지나갈 때는 밝은 들판을 다시 볼 희망을 갖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이 순간순간의 구차한 자리를 이어갈 생각만 하는 모양이다.
 

▲ 중국의 2010년 드라마 '삼국'에 등장한 순욱의 모습.


드라마 삼국지를 보다가 순욱과 조조의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조조 진영의 2인자라는 단맛에 빠져 한황실의 숨통을 끊는 일에 적극 협조한 그의 평생의 일이다. 이미 일이 다 정해진 마당에 느닷없는 황실 수호는 과연 그의 본뜻인지, 아니면 2인자는 절대 2대주주일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은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순욱 얘기를 꺼내는 것이 그렇게 느닷없는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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