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례적으로 30일 스스로의 거취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설정했다.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많은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거듭 일관된 입장을 밝혔다. 특히 유승민 새누리당과의 문답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재정을 통한 재원을 마련한다면 "중앙은행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며 한걸음 더 나아갔다.

본지 뿐만 아니라 명망있는 많은 언론인들이 구조조정 자금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하고 국회 승인하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집행간부가 부정적 의견을 표명했고 이주열 총재도 발권력 불가를 천명하더니, 지난 8일 돌연 10조 원의 발권력 행사를 합의하고 말았다. 한은은 7월1일 이에 관한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받아야 할 시점이다.

그사이 엄청난 변수가 발생했다. 정부가 10조 원의 추경 편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이에 대해 내역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하지만, 한은이 동원할 발권력을 추경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기대성 제안도 함께 내놓고 있다. 유승민, 김부겸, 이혜훈 의원 등 인지도 높은 의원들이 여야를 초월해 이주열 총재를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주열 총재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구차하게 2년의 안위를 추구하다 영원히 나쁜 선례를 남긴 중앙은행 총재로 남을건지, 아니면 남은 임기 2년을 걸고 원칙을 분명히 밝힌 후 고 전철환 총재의 당당한 후임자로 우뚝 설 것인지를 선택할 때다.

이주열 총재는 원칙을 밝히는 듯 하면서도 논점을 흐리는 단어 하나를 자꾸 구사하고 있다.

"적기에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 한은도 뭔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은 부실 책임을 추궁하는 국회를 회피하겠다는 오해만 낳고 있다. 본심이 어떻든 국민과 시장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이 총재는 자신이 부임할 때 "선배 총재가 오셨다"며 환영한 한은 후배들의 열망도 잘 헤아려야 한다.

1970~1980년대처럼 정부 지침만 잘 따라 '미스 아무개' 별명을 얻으면서 임기 다 채운 것을 중앙은행 독립성 강화로 반길 한은 후배는 거의 전무하다.

이혜훈 의원은 30일 회의에서 남들이 붙인 별명이 '한은 도우미'라고 밝혔다. 그는 이 총재에게 "맥없이 한은이 정부 압력에 무너질 때마다 한은과 독립된 통화정책을 성원하던 많은 사람들의 맥이 빠진다"고 개탄했다.

이것은 이혜훈 의원 한 사람만의 심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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