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서 친구들 사이에 '그칠 줄 모르는 외판원'으로 전락한 은행원들

▲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포털을 통해 읽은 주간지 기사는 나올 기사가 드디어 나왔음을 알려줬다.

은행 직원들이 카카오톡의 친구들에게 자기 회사 상품 나올 때마다 실적 올려달라고 애걸복걸하다가 이제는 성가신 외판원 취급을 받게 됐다는 얘기다.

예전 같으면 기자까지 덩달아 이런 행태를 비꼬다가는 은행권 친구들의 비웃음을 사기 쉽다. 도움 될 만한 형편이 안 되는걸 알기 때문에 친구들이 애초부터 요청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기자까지도 종류가 다른 형태의 상품들에 대한 요청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기자의 전화기에는 시중은행 한 곳이 운영하는 메신저가 깔려있다. 어쩌다 은행 사람들 끼리나 쓸 법한 메신저를 깔았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 들어가 보면 놀랍게도 엄청나게 많은 친구들이 이미 내 친구 목록에 올라있다. 이 가운데 그 은행을 다니는 사람은 10분의 1도 안 된다. 이들 모두 아는 사람이 그 은행 다니는 바람에 깔게 됐을 것이다. 이 메신저에 가입할 때 추천한 사람의 행번도 입력해야 했다.

그렇다고 사용이 빈번한 것도 아니다. 여태 이 은행의 메신저로 연락이 온 건 관리자 안내 메시지 뿐이다.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 다니는 친구들이 자기 회사 앱을 깔아달라는 요청을 심심치 않게 해 온다. 처음에는 “이 정도도 못 도와줘서야” 해서 선뜻 가입을 했다.

하지만 가입 과정에서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공유해 가겠다는 안내문과 이런저런 절차가 잠재의식 속에 거부반응을 쌓아놓은 모양이다. 어느 시점에서 그런 요청을 받아도 ‘나중에 하지’라는 관성으로 자꾸 미루게 됐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금융기관마다 이러니 기사를 써야 되나 생각이 들었다가 하나같이 각별하게 지내는 사람들이어서 펜을 내려놓았다.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한 주제에 결기부터 앞세우기가 미안한 일이다. 그러다 마침내 주간지에서 쓴 기사가 포털의 대문을 장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2년 가까이 은행 생활을 해본 경험에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꼭 필요한, 일 잘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다.

업무에 집중해서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 주기적인 휴식 5~10분을 제외하면 일을 손에 놓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 일을 마치면 오래 생각하고 준비해 온 다른 커다란 일에 다시 매달린다. 이런 집중력은 가족에 몰두하는 심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야근을 할 필요도 없어 퇴근 때가 되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퇴근한다. 꼭 가야되는 저녁 회식을 마치면 2차 타령하는 사람들은 쳐다도 안보고 바로 퇴근한다.

이 사람하고 같이 근무하면서 그가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업무 시스템 덕택에 나도 덩달아 시대를 앞서가며 근무할 수 있었다. 항상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은행의 높은 분들이 특별한 프로젝트를 맡기는 경우도 흔했다.

30명 부서에서 이런 유형의 사람이 10명만 되도 은행은 5년 안에 세계 100대 은행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런데, 은행 현실은 이런 사람 10명을 만들기커녕 한 명도 제대로 두기 어렵다. 일과시간 중에 쓸데없는 실적 강요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예금 같은 상품 가입 강요가 많았다. 이것도 절대 선진화된 은행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최근에는 더욱 한심하게 무슨 앱이나 메신저를 다운받아 깔아달라는 실적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걸 가입할 때는 추천한 사람 행번 입력이 필수다.

구조조정같이 뒤숭숭한 단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런 걸 초개같이 여기고 진정으로 은행에 필요한 업무만 하겠다는 행원이 남아날 리 없다.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 같은 특수한 상황 말고도 1년에 8번씩 열리는 미국 일본 중앙은행의 회의 등 은행원이 인터넷에서 5분만 검색해도 당장 은행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현재 국제 금융 ‘트렌드’를 파악해서 앞으로 업무 방향을 설정하려고 해도, 쓸데없는 앱이나 메신저 가입 실적 올리라는 독촉이 신경을 건드린다. 친구들 사이에서 외판원 취급이나 받는 은행원이 무슨 자긍심이 있어서 세계 100대 명문은행을 만들어낼까.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근본원인은 실력 안 되고 심성도 못 갖춘 중간 관리자들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더 높은 고위층에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것이라곤 메신저나 앱 가입 숫자뿐이다. 이런 형편없는 실력이니 아랫사람들에 대한 카리스마는 진작에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자기 지시를 따르지 않는 꼴은 두고 보지 못한다. 누가 실적을 몇 건 올리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마련하는데 그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한다.

누가 부지런하게 많이 가입시키고 누구는 상사 지시를 개떡같이 여겼는지 자료가 나온다.

돈 벌라는 은행이 앱 가입 숫자로 당장 직원을 어쩌지는 못하지만, 가입 실적이 낮은 사람은 두고두고 뒷말을 할 수 있는 소재거리로 남게 된다.

은행원 근무시간이 은행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일로 은행원들 신경체계나 건드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시간이 됐다.

이미 한국은 대소변 못가리는 자질미달이면서 떡하니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중간 관리자 때문에 ‘퇴근 후 업무용 카카오톡 금지’ 법안이 나오는 나라가 돼 있다.

성과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무조건 ‘불순분자’라고 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은행권에 난무하는 ‘성과’라는 단어는 은행원들을 자사 앱 판매원으로 전락시키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회장님’으로 격상(?)돼 불리고 있는 은행장들이 이런 현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일 잘한다고 해서 지난 달에 부장 과장으로 승진시킨 직원들이 투자이익을 많이 남긴 사람들이 아니라  사실은 앱 팔이를 잘한 사람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다 은행이 앱이나 파는 곳이 됐는지... 그런 꼴 보기 전에 은행원을 그만 둔 것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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