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장님의 다급한 문자를 받는다"는 이동통신 회사의 광고.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업무가 끝나고 아랫사람들에게 전화로 일 시키고 카카오톡 보내는 인간들을 기자는 매우 경멸한다. 경멸의 차원을 넘어 정말 모자란 능력으로 차지한 자리를 발악하며 지키려는 오물 같다는 극단적인 혐오의 감정도 가지고 있다.

이런 자들이 우리 아들, 딸, 조카들의 윗사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당장 사무실로 쳐들어가 톡톡히 망신을 주고 싶은 충동까지 있다. (물론 그런 짓도 실천할 경우엔 만만찮은 꼴불견임을 잘 알고 있다.)

기자 개인의 경험에서는 이런 자들 치고 실력 갖춘 책임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평기자 시절, 기자의 데스크는 회사 특종의 절반 정도를 취재해 오는 막강한 분이었다. 이 분의 업무 방침은 “일 하는 시간에 제대로 잘하자” 그리고 “일단 퇴근하면 모든 것을 다 잊는다”였다.

퇴근 후나 휴일 중에 아주 드물게 전화를 받는 일이 있기는 했다. 이 경우는 전부 데스크가 다음날 아침 중요한 행사가 생겨서 아침 편집 회의를 대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이것도 업무라면 업무랄수도 있지만 조직 내에서는 나를 가장 신뢰하셔서 맡기는 일이니 차원이 다른 것이다.

몇 년 세월을 출입처 기자실 부스로 걸려오는 데스크 전화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를테면 낮 시간에 내가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알려고도 안하는 분이었다. 나의 모든 행적이 만드는 성과는 기사의 품질에 담겨서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분이 친하게 알고 지내는 각 기관 고위층들이 “아무개 기자는 좀 뚱딴지야” 한마디 전하는 속에 부원 대부분의 행적이 이미 드러나기도 했다.

이 무렵, 옆의 부서 데스크가 나한테 자랑이라면서 증권사 메신저를 보여줬다. 자신은 이것으로 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본다는 것이다. 별로 수긍이 안가는 얘기지만, 그냥 듣기만 했다. 객관적으로 역량에서 결코 우리 데스크를 앞선다는 평가를 듣는 분은 아니었다.

이 부서 기자들은 일주일 내내 전국 방방곳곳 어디서나 활발하게, 활기차게(?)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것은 노트북을 통한 소통이어서 오늘날의 카카오톡만큼 사생활을 깊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최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이른바 ‘퇴근 후 카카오톡 금지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법이 필요할 정도로 업무용 카카오톡을 남발한 혐오스런 인간군(群)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쉬고 있는 아랫사람에게 카카오톡 쓸 시간을 “내 자리에 적합한 다른 유능한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은가”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바꾸기를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런데 여기서 억울하게 한꺼번에 매도당할 수 있는 다른 구시대 상급자들을 위한 변명은 한 번 달아보고자 한다.

태생적으로 메시지보다는 통화가 편리한 ‘아재’ 보스들을 위한 변명이다.

사실 요즘 아랫사람들하고 음성 통화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한번 통화가 가능해지면 그것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기회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전화를 걸면 절반은 안 받겠거니 한다. 사람에 따른 편차도 있다. 벨소리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데서 ‘역시 전화는 하지 말아야 했어’라는 느낌이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이 지천명에 접어들어 대충 눈치가 있는데, 인간적인 혐오까지는 아닌 줄은 잘 알겠다.

“다른 일 하고 있었다” “못 들었다” 사유는 많은데, 나중에 어찌어찌해서 진짜 이유를 알고 보면 “메신저로 하시면 될 것을...”이다.

이 현상은 한국만의 일도 아닌 모양이다.

영화 ‘위플래시’에서 인상적인 조연 연기로 아카데미 상을 받은 J K 시먼스는 수상 소감 말미에 “엄마 아버지한테 전화 좀 해. 지구상에 엄마 아버지가 계시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면 문자말고 전화를 하라고”라며 자녀들에게 일갈해 폭소와 함께 갈채를 받았다.

부모조차도 음성통화가 어려운 세상이니 직장에서 몇 자리 위에 있는 사람이 더욱 바라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일할 동안에는 웬만하면 문자보다 통화를 좀 하면 안 되겠나? 특히 요즘 카카오톡 문자를 치기는 정말 힘들단 말이다.

심지어 퇴직인사를 메신저로 받은 적도 있다. 처음 회사 올 때 내가 소개한 일도 있고 해서 고맙다는 것인데 이런 연유라면 우리는 굳이 찾아오지는 않더라도 전화로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을 메신저로 대신한다면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으로 알고 받아두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나는 여기고 있다. 그래서 받아두기만 했더니 그만 답장도 안하는 매정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인사도 자기들 시대 원칙대로 하고 답례도 우리 원칙이 아닌 자기들 원칙대로 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불공평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냥 인사 생략하고 바로 각자 할 일로 돌아가는 것이 피차 편안한 일이다.

정말 ‘아재들’에게 예의를 표시하고 싶다면 그 때만큼은 ‘아재들’ 시대 원칙을 조금만 헤아려줬으면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예전대로 하자는 소리는 대다수 양식 있는 ‘아재들’도 혐오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시 이 글이 업무 후 카카오톡질을 남발하던 꼴통들에게 일말의 면죄부가 될까봐 염려해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못 박는다.

한때 유행하던 윗사람의 네 가지 유형 분류가 있다.

최고는 ‘똑부’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보스 밑에 있으면 아랫사람들이 편하다. 헛된 노동력 낭비가 없고 팀 전체가 승부를 걸어야 할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기자가 경험한 경우다.

이때는 대신, 절대로 보스를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보스가 워낙 출중한 분이어서 거짓말은 바로 들통 난다. 가장 흔한 거짓말은 명백한 잘못이나 실수를 덮으려고 없는 일을 꾸미거나 애매한 말투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 부류다.

그 다음은 ‘똑게’다. 이 때도 노동의 효율성은 높지만 게으름이 가끔 발동해 팀의 승부처를 놓치기도 하는 것이 단점이다. 정상의 문턱을 넘기도 어렵지만 차지했을 때 오래 유지도 어렵다.

멍청하고 게으른 ‘멍게’ 보스를 모시고 있다면, 지금 당장 속상할 일은 없을지 몰라도 때가 왔을 때 팀을 빨리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도 멍청한 보스의 게으름이 오히려 보약이 돼, 자멸을 빨리 초래하는 일은 면한다.

단연 최악이 ‘멍부’다. 지능을 갖추지 못한 이 사람의 부지런함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알량한 지위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만 발달했다. 많은 직원들의 퇴직사유를 발생시킨다.

퇴근 후 카카오톡을 남발하는 이런 자들이 바로 ‘멍부’ 유형이다. 퇴근 전 했어야 할 자신의 일을 지금 아랫사람들에게 열심히 문자로 날리고 있는 중이다. 어설픈 이모티콘 몇 개도 약간씩 섞으면 ‘아재’티를 감출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