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에 나서는 모습 자체를 즐기는 올림픽을 되찾아야

스위스 축구선수의 비신사적 플레이에 격분한 한국 국민들이 그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몰려가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인들을 때리고 싶다”고 내뱉었다.

 
한국인들의 행위가 선수 입장에서는 개인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차원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가 트위터에 남긴 말은 인류사적 범죄인 인종 차별의 소지마저 안고 있었다. 그는 끝내 스위스 대표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중국의 배드민턴 선수들이 상위 라운드에서 자국 선수들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패배하는 추태를 저질렀다. 세계배드민턴연맹이 징계에 나섰는데 뜻밖에도 징계를 받은 8명 가운데 4명이 한국 선수였다.
 
한국팀으로서는 중국의 고의 패배에 어떻게든 맞서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또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한국 선수들의 고의 패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중국이 아닌, 그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로부터 시작해 전 세계 올림픽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었다.
 
‘금메달이 모든 것’이라는 국수적인 관점에서의 올림픽 감상을 이제 탈피해야 한다.
 
‘우리끼리’라는 정서가 남달리 강한 한국인들이다. 이런 것은 세계 무대에서 ‘쇼비니스트’라는 오명을 쓰기에 최적의 토양이다.
 
조금만 지나서 돌이켜보면, 금메달을 누가 따고 누가 졌는가보다 승자에게 격려를 해주는 패자의 모습이 영원한 감동으로 남게 된다. 혹자는 종이나 컴퓨터에 저장되는 기록만이 의미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집착할지 모르나, 요즘은 동영상이나 각종 미디어 방식이 개발된 세상이다. 감동 그 자체를 원형에 가깝게 얼마든지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억울한 판정으로 메달을 놓친 신아람 선수가 3-4위 전에 나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 철이 덜 들었거나 올림픽을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의 소리다.
 
만약 신 선수가 3-4위 전에 나가지 않았다면 그의 상대가 되는 선수는 올림픽 3-4위 전 무대가 억울하게 박탈당하는 일을 겪었을 것이다. 물론 신 선수는 ‘실력상의 금메달리스트’답게 이런 유치한 행위를 하지 않고 당당하게 또 하나의 승부에 나섰다.
 
억울한 일을 겪고도 또 하나의 승부를 피하지 않고 나서는 모습.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올림픽의 아름다움이다. 지켜보는 우리도 이제 이런 진짜 올림픽의 멋을 즐길 때가 됐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