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 KDB 회장은 '연락두절'로 끝내 안나타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기자는 언론계 들어오기 전 산업은행을 다닌 ‘산은 사람’이다.

산업은행을 다니던 시절이나, 기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산업은행 행장’이나 ‘산업은행 회장’은 어감이 어색하다. 아직도 산업은행은 ‘총재’가 단단하게 밀고나가는 곳이라야 제격이라는 정서를 갖고 있다.

이것은 산업은행 총재를 굳이 행장이나 회장으로 바꾼 후 별로 좋은 구경을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럼 총재 시절엔 뭘 그리 잘했냐고 따질 것이다. 완벽하게 잘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은행 총재들은 부여받은 사명을 평균 B학점은 될 정도로 밀어붙였다.

지금의 해운사태는 예전처럼 재무부 차관하다 부임한 총재들이 “그래. 나는 관치의 화신이다”라는 태도로 밀어붙였다면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종합감사가 벌어진 19일,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은 이래서 더욱 씁쓸함을 깊게 하고 있다.
 

▲ 국회 정무위원회의 18일 국정감사에 제출된 증인 출석 현황. /사진=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가 출석을 요구한 증인 가운데 누구는 나오고, 누구는 나름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불출석했다.

그 가운데 유독 한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도 없이 연락두절로 안 나타났다. 홍기택 전 KDB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다.

그는 앞서 한국이 많은 돈을 출자한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의 부총재 자리를 잃게 만든 장본인이다. 산업은행장 재임 때 부실 대출과 그에 따른 현재 해운 사태는 별도 문제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다.

책임질 것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할 텐데 그냥 저렇게 잠적한 상태가 돼버렸다.

홍 전 회장이 만약 KDB 회장을 맡지 않았다면, 그는 소속 대학의 교수나, 명예교수로 명성은 유지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정년퇴직 때 제자들 사은회도 못 받고 저런 형편이 됐다.

산업은행은 피폐해 정부가 중앙은행에 구걸할 지경이 됐고, 대출 기업들은 현재 경제위기의 초점이 됐다. 그리고 홍 회장 개인도 일신의 명예와 경력이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산업은행 총재가 행장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산업은행의 총재 직함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국회에서 “다른 은행은 다 행장인데 왜 당신만 총재인가”라고 따졌던 사람이다.

금융계는 그런 정서가 ‘총재 → 행장’으로의 격하(?)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곧 이해 못할 변화가 뒤따랐다. 이번에는 산은금융그룹으로 만들어 산업은행장을 회장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업은행장으로 옮기던 무렵이다.

차관들이 가던 산업은행 총재 자리인데, 장관이 과연 행장으로 갈까 했더니 이런 조화(?)가 일어났다.

산은금융그룹이란 것이 출범한 뒤, 금융계와 관련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어설픈 재벌 흉내낸다는 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평생 은행에만 있던 사람이 무슨 조선업을 안다고 고위직을 차지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2012년의 일이다. 그런 비판이 지금의 한국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산업은행 회장에는 교수 출신이 부임했다.

산업은행이란 국책은행이 아예 없어질 것이 아니라면, 곪아터지는 현안을 해결하는 정부 정책의 돌격대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장관자리 꿈꾸는 역대 재무차관 출신 총재들은 이런 역할만큼은 90점에 가깝게 충실했던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헬기를 타서라도 공장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자리가 대통령 선거의 전리품처럼 이리저리 떠다닌 게 지난 8년 동안의 일이다.

기자는 어느 총재가 부임하는 자리에서 “국책은행은 정부 정책 도구”라고 밝히자 “심한 표현 아닙니까”라고 따져 이 사람을 수행한 홍보실장이 서둘러 기자회견을 끝낸 적도 있다.

그랬던 기자가 이제 와서는 차라리 차관 출신 총재들이 훨씬 더 훌륭했다고 개탄하고 있다. 그 때는 이렇게 산업은행 ‘총재’급인 사람이 ‘연락두절’되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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