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10.26 사태를 풍자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박정희 대통령으로 등장한 송재호는 측근에게 돈 봉투를 건네주면서 “돈 좀 아껴 써”라고 주의를 준다. 정치자금을 내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18년째 독재정치를 한 통치자가 비자금 없이 정치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기업의 비자금이 유입되는 모습은 당시를 다룬 책에 일부 소개돼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현재 ‘친박’ 성향의 언론인으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다다.

책의 내용 또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대해 긍정적인 톤으로 전하는 부분이 많다. 다만,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저자의 판단을 강요하기 보다는 당시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김정렴 전 주일대사는 1970년대 유신 체제로 들어선 이후 무려 9년간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이 기간 그는 기업들의 비자금 접수창구 역할도 했던 모양이다.

이 책에 따르면 비자금을 바치러 오는 기업총수들은 김정렴 비서실장을 위한 별도의 자금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들은 이것을 ‘큰 봉투’와 ‘작은 봉투’로 구분했다. 대통령에게 가는 것이 ‘큰 봉투’고 김정렴 실장에게 가는 것이 ‘작은 봉투’다.

김 실장은 재벌 총수가 ‘작은 봉투’를 꺼내면 바깥의 비서실 직원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이봐. 아무개 회장님이 사무실 운영비 주셨어”라고 외쳤다.

김정렴 실장의 증언대로라면, 그는 일체 청와대 안의 ‘작은 청와대’ 처신을 안 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사람을 파악하는데 일가견 있는 사람이 무려 9년이나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었던 이유가 된다.

측근을 자처해 기업을 찾아다니며 돈을 뜯어내기커녕, 제 발로 찾아오는 ‘봉투’마저 의혹의 여지가 없게 방문을 열어놓고 관리했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랫사람 때문에 모시는 분이 욕먹는 일만큼은 절대 없도록 해 준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엉뚱한 데서 균열이 가고 있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렴 실장은 서열상 경호실장보다 위지만, 크고 작은 일로 도발해오는 차 실장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치러야 했다.

전화 통화는 단적인 예다.

이 무렵 차 실장은 심지어 총리와의 통화 때도 비서를 시켜 전화를 걸고는 총리가 수화기를 든 이후에 비서로부터 수화기를 넘겨받았다고 한다.

김정렴 실장에게도 똑 같은 태도로 전화를 걸어오자 김 실장은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두 번 다시 통화할 생각하지 마!”라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차지철 실장이 경호실장이 된 것은 1974년 8.15 경축식 때 육영수 여사가 피격 서거한 이후다. 1979년이면 5년째 이런 실랑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허리에 이상이 와서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곧 주일대사로 가게 됐다. 김정렴 실장은 이상하게도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주일대사로 가자마자 허리 아프던 것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비서실을 떠난 것은 청와대 내 경호실과의 균형이 완전히 역전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후임자로 온 김계원 비서실장은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의 적적한 처지를 위로하는 ‘술친구’ 역할에 치중했다.

비서실이 무력해지자 차지철의 경호실은 더욱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침내 대통령 주변에 ‘인(人)의 장막’을 쳤다는 비판에 나오면서 정권 전체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됐다. 김정렴 실장이 떠난 바로 그 해다.

1970년대 후반이면, 박정희 대통령이 오랜 통치에 따른 피로에 심하게 짓눌릴 때다. 특히 아내를 잃고 난 후 급속해 지고 있었다.

비서실장이 ‘폐침망식(廢寢忘食)’으로 이를 보필하는 데도 인체의 한계가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측근이 자리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때그때 파국으로 이어질 결정타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측근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면, 주인의 판단이 맑아지는 법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모 자치단체장이 300억원을 들여 ‘박정희 공원’을 조성하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도 어려운데 공연한 일을 한다”며 이를 일축해버렸다. 4년이 지나면서 이런 명쾌한 판단은 갈수록 드물어졌다. 장영실 동상이 있던 자리에 박정희 동상이 들어서고 북한의 주석 방문을 소개하는 듯한 말투를 담은 표지판이 등장하더니 마침내 지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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