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금의 평화적 시위는 어려운 때 국가 에너지에 대해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평화롭게 시위하는 국민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0만 명이 넘게 모였다가  거리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가는 사람들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내 나라 사람들 말고는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장면은 정말로 외국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장면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이 장면을 접한 이란 사람은 “저 사람들은 축구 경기가 끝나도 저런다”고 밝혔다.

한국에 대해서는 축구와 관련해 가장 관심이 높은 이란 사람들은 “정처 없이 앞을 향해 공을 차는 이상한 축구를 한다”며 조롱하기도 하지만, 시위대가 거리까지 치워놓고 가는 장면에는 그 시민정신에 경의를 금치 못하는 것이다.

19년 전의 ‘IMF 위기’와 비슷하다는 한국에서 지금 당장은 ‘평화로운 시위대’만큼 국가브랜드로 내세울만한 것도 없다. 해외에서 억류된 해운사 직원들에게 그나마 희망적으로 다가갈 뉴스가 달리 뭐가 있을까.

‘최순실 파동’ 항의 시위 4주차인 19일은 생각 다른 두 시위대의 충돌 여부가 긴장을 초래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단체인 박사모 등이 이날 낮에 서울역에서 집회를 갖는 한편,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박 대통령 하야 촉구 시위가 열렸다.

한국인의 심성과 저력에 비춰봤을 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밤 10시가 돼 가도록 두 시위대간의 불미스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사람들간 생각은 절대 같을 수 없다. 한 가지는 누구나 꼭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어떤 정치인을 미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까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유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 것이다.

내 주위 종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인데도 생각이 천차만별인 것은 민주국가의 당연한 현상이다. 생각이 다를 뿐이지, 매일매일 내가 신세를 지고 있고, 때로는 이 사람을 도울 때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그런 동료고 동지들이다.

정치인 누구를 좋아하고 혐오하는 것이 김치찌개 놓고 소주 한 잔 나누는 자리의 입심거리는 될 수 있어도 거리에서 만났다고 서로 멱살 잡고 주먹을 휘두를 일이 절대 아니다.

10여 년 전, 소속회사에서 나와 신분이 자유로웠을 때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른 볼 일이 있어 잠시 나와 꺼진 촛불과 컵을 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이게 민주주의요?”라고 언성을 높이며 따졌다.

순간 ‘잘 만나셨습니다. 어디 한번 따져볼까요?’라는 충동과 함께 딱딱한 말투로 “네. 민주주의 맞습니다!”라고 대꾸를 했다.

그런데 1초 남짓한 시간에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평생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살아온 분일 테고, 이런 보수적 성향을 갖는 건 우리 집안 어른들하고 하등 다를 바 없는데 이분하고 말다툼해서 이긴 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위에 동참한 건, 우리 생각이 옳은 것이니 다른 분들도 뜻을 모아달라고 나온 것이다. 생각 다른 사람이라고 조롱하고 다그쳐서 불쾌하게 돌려보낸다면 오히려 시위 목적에 피해를 주는 것 아닌가.

태도를 바꿔서 노인이 지적하는 것들에 대해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하기는 우리 집안 어른들도 그러하시니...” “그런데 말입니다” 라면서 이러이러해서 “저희가 이러는 겁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물론 이 정도 언변으로 나이도 많은 분이 생각을 바꿀 리는 없었다. 그래도 대화 분위기는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었다.

끝으로 “저희가 저러고는 있지만, 이따가 끝나면 저 자리를 말끔히 정리해서 돌아갑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 쯤 할머니의 말투도 아주 부드러워져서 “오 그래요?”라고 반문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라고 인사하고 헤어져 볼 일을 본 후 시위장소로 돌아갔다.

집회가 끝나고 모두들 일어나 정리를 하는데, 아까 대화를 나눈 할머니가 저만치 서 계셨다. 정말로 청소를 하나 확인하러 오신 듯한데, 그건 내말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아주 막가는 건 아닌 것으로 확신을 하고 구경을 온 것이라 생각됐다.

또 한 번 인사를 드렸는데 처음에 나에게 쌀쌀하게 말을 붙일 때 표정이 아니라 헤어질 때의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과거의 일담을 자랑하자는 건 아니다.

알고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같은 사람들인데, 정치가 개입됨으로써 서로 뒤틀리게 바라보는 왜곡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시민들끼리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굳이 대단한 난동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다. 무슨 이해 관계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이 시국에 그나마 경이감을 불러 일으키는 우리 스스로의 저력을 갉아먹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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