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대부분 정치인은 3선 국회의원을 지낼 때까지는 무난한 이미지를 유지한다. 이때는 국회 상임위원장을 맡거나 당 사무총장을 지낸다.

4선의 반열에 올라가면, 예전보다 더한 정치색이 요구된다. 극심한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 정치에서 웬만한 정치인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꽤 오랜 기간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누리당 주자로 간주됐다. 그러나 막상 ‘잠룡’의 반열에 올라갔을 때, 지지도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의 대중적 확장성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국정 교과서에 총대를 멘 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야당에 대해 ‘색깔론’을 제기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히 야당 선호경향이 높은 수도권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없다.

하지만, 그 역시 3선의 중진일 때까지 보여준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열린우리당 분배 정책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종합부동산세의 최초 산파는 김무성 전 대표가 될 뻔했다는 사실은 2010년 이후 정치 뉴스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반전(?)’일 것이다.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무성 전 대표는 경제전문 국회의원은 아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0년대 5공 치하에서 재야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통해 민주투쟁을 할 때부터 김 전 대통령을 따랐다.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이 5.18 기념식에 참가한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가장 힘 있게 부를 수 있는 의원 가운데 하나가 김 전 대표다.

김영삼 정부에서 그는 민정수석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거쳐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 등원했다. 이런 발탁 과정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당시 정치부 기자들은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란 별명을 붙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김 전 대표가 상주인 김현철 씨와 함께 빈소를 지킨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재야 출신으로 국회에 진출했지만, 3선이던 2004년 17대 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장(지금의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상임위 운영에서 같은 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을 먼저 자제시키는 방법으로 무난한 운영을 이끌었다. 유일한 진보정당 소속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현 정의당 대표)에게는 다른 의원들보다도 발언 시간 등에서 유무형의 배려를 했다. 이 때 초선이었던 심 의원은 첫해 국정감사에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밝혀내는 등의 여러차례 맹활약으로 위원장의 배려에 호응했다.

또 다른 경제전문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는 위원장석 점거에 따른 파행 뿐만 아니라 수시로 정회가 거듭됐지만, 재경위는 증시 투자 확충에 관한 많은 법안들과 관련 청문회들을 처리하면서도 한 차례 파행도 벌어지지 않았다.

특히 그해 말, 1차 종합부동산세의 심의는 그의 운영능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이하게도, 이날의 진행상황은 야당 소속인 김무성 위원장이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을 강하게 제어하면서 법안 처리과정을 이끌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386’ 운동권이 아니라 재무관료 출신인 김진표 의원이 앞장서서 통과를 주도했다. 1차 종부세는 나중에 실제 적용된 종부세 보다는 느슨한 과세 기준을 갖고 있었다.

재경위의 한나라당 의원들도 일부는 “취지로는 필요한 법이지만 왜 국세로 하느냐. 지방세가 맞다”는 정도의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 강남과 서초가 지역구인 이종구, 이혜훈 의원과 언론계 시절부터 친기업 정책을 주장해 온 최경환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다.

김무성 위원장은 수 차례 “법 자체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의원들이 여당에 대해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면 매몰차게 “자극적 표현 쓰지마”라고 일갈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여당의 법안이라고 해서 상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당 의원들을 자제시키고 있었다.

오전에 진행된 분위기로는 김 위원장이 1차 종부세의 산파나 마찬가지였다.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열어 법안이 재경위를 통과할 예정이었지만, 정회한 도중에 한나라당이 당시의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과 관련해 국회일정을 전면 보이콧했다.

이 때문에 김무성 위원장의 진행 하에 1차 종부세 법안이 통과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법의 내용도 나중에 훨씬 강화됐다.

10년 넘게 시간이 지나 이제 6선 의원이 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23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며 동시에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선언에는 자기 당 대통령을 퇴진시키려는 데 따른 책임도 있지만 현실적인 지지도 또한 작용했을 듯하다.

중진 시절, 국정에 대해 상당한 이해도를 입증한 정치인으로서는 안타까운 장면이다. 전문적 영역에서도 제법 솜씨를 발휘한 사람인데 4선 이후에는 오로지 정치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때로는 ‘친박’이라서 공천을 못 받았고, 그 다음은 ‘배박’이라고 잠시 백의종군을 했다. 거기다 건국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정교과서 채택에도 앞장섰다. 그러다가 박 대통령과 다시 노선이 갈라져 ‘옥새파동’을 일으켰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없는 정치를 했다면 그의 오늘날이 어땠을까. 전문적 국정 분야에 좀 더 주력하는 기간이 길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정치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그가 이번에 띠운 승부수에 따라 앞으로 일이 어찌될지 100% 확정된 것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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