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10)...앱솔루트 보드카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학창 시절에 파트너를 자주 바꿔 연애 대장으로 불리던 친구들이 40-50을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좋은 상대를 계속 찾다보니 결혼하지 못했으리라. 수많은 외주 업체를 활용하는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도급 계약 관계를 장기간 유지하는 경우가 퍽 드물다. 예컨대, 광고회사나 PR회사에 일을 맡겨도 우리나라에서는 3년을 계속하기 어렵다. 지금의 업체가 일은 잘 하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 밖의 서비스에는 무심하니 왠지 바꾸고 싶어진다. 그런 순간에 그 밖의 서비스를 잘해주겠다는 다른 업체가 나타난다.

이렇게 해서 예정에 없던 경쟁 프레젠테이션이 생겨난다. 겉으로는 공정 경쟁이라고 하지만, 이미 업체를 내정해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용역 업무에 있어서도 대행사가 해마다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1년 단위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현실에서 부득이한 측면도 있지만, 조금 알만하면 대행사를 바꿔야 하고 해마다 새로 시작해야하니 관련 지식이 축적될 수가 없다. 연애 대장들처럼 늘 새로운 파트너와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니, 정책에 대한 장기 캠페인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e Vodka) 광고에서 파트너를 바꾸지 않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자.

 

 
▲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앱솔루트 도시(Absolute Cities) 캠페인은 ‘앱솔루트 L.A.’ 편(1985)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장기 캠페인이다. 보드카와 도시가 관련성이 없다는 처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도쿄, 시드니, 베이징, 방콕, 스웨덴의 아이스호텔 유카스야르비(Jukkasjarvi), 모스크바, 그리스 북부의 교구청 소재지 테살로니키(Thessaloniki), 애틀랜타, 브루클린, 로스앤젤레스, 맨해튼, 시애틀 등 여러 도시에 앱솔루트 병 모양이 등장했다. ‘마드리드’편에서는 기타로 유명한 세고비아를 연상하도록 기타 중앙에 앱솔루트 병 모양의 홈을 팠고, ‘암스테르담’ 편에서는 관광 도시를 강조하려고 박물관 건물을 병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비엔나’ 편에서는 음악의 도시를 알리기 위해 음표들을 모아 병 모양을 형상화했다.
 
우리나라도 광고 소재로 활용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 이름을 쓰지 않고 아예 “앱솔루트 코리아”라는 헤드라인을 써서 ‘한국’편(2016)을 소개했다. 광화문 촛불 행진 장면을 담아 “미래는 창조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광고 창작자들은 광화문의 촛불 열기를 병 모양에 담아 민심의 향방을 정확히 묘사했다. 여러 캠페인에서는 앱솔루트 병을 주인공으로 삼고, ‘앱솔루트 ○○○’ 형태의 두 단어 카피를 사용해서, 광고를 파인아트처럼 만들거나 파인아트의 광고화를 시도했다. 똑같은 형식과 내용을 유지한 이 광고들은 도시별 특성을 앱솔루트의 자산으로 연결시켰다. 광고 창작의 핵심은 도시의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까지 담아내는 데 있었다. 앱솔루트 병 모양 광고는 콘셉트와 스타일은 30년 동안 바뀌지 않았지만 도시의 특성을 소개하는 메시지 내용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렇게 해서 ‘결코 바뀌지 않으면서도 늘 조금씩 바뀌는’ 성공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다.
 
다들 알다시피 앱솔루트 보드카는 1879년 랄스 올슨 스미스(Lars Olsson Smith)가 스웨덴에서 알코올 40%와 물 60%를 섞어 연속식 증류법을 개발해 보드카의 상품화에 성공하면서 시작되었다. 1979년부터 수출을 개시해 1980년에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의 작은 수입업체 캐릴런(Carillon Importers)사는 앱솔루트의 론칭에 앞서 광고회사 TBWA와 광고 대행 계약을 맺었다. 앱솔루트는 1981년의 론칭 때부터 20여년간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TBWA에게 광고를 맡겼다. 그렇게 해서 20년 동안 일관된 콘셉트를 유지한 앱솔루트 캠페인은 광고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 된다. 더 잘해주겠다는 여러 광고회사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앱솔루트는 작은 실수마저 감싸며 TBWA를 20여 년 동안이나 믿어주었다. 광고의 핵심적인 성공 요인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이 캠페인은 광고 자체의 성공은 말할 것도 없이 매출 신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981년에 2만 상자가 팔리던 앱솔루트 보드카는 광고를 시작한지 10여 년 만인 1994년에 300만 상자가 판매되었다. 1만4900%라는 놀라운 신장률을 기록한 것. 여러 도시의 시장들은 광고에 자기네 도시 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많았고, 도시 시리즈를 우표 수집하듯 모으는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의 특징은 상품의 속성 대신 이미지와 분위기를 강조했고, 상품과 광고를 예술 작품처럼 느끼게 했으며, 소비자 조사에 근거하지 않고 광고 창작자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에 전적으로 의지해 광고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세 가지 창작 방법론이 효과를 발휘했던 결과인지, 앱솔루트 보드카는 1992년에 나이키 및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마케팅협회의 ‘마케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성과는 광고 창의성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지만 20여년 이상을 흔들림 없이 광고회사 TBWA를 유일한 파트너로 믿어준 앱솔루트의 완벽한 동반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앱솔루트 캠페인 사례는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아 외주 업체를 수시로 바꾸려 하는 경영자들이 유익한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세상에는 바꿔야 좋은 것도 있겠지만 바뀌지 않을 때 더 좋은 것도 많다. 30년 동안 바뀌지 않았지만 내용은 조금씩 바뀌어온 앱솔루트 광고는 물론 기업 경영에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우리네 인생사에서 말해 뭐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40-50년 동안 바꾸지 않고 한 사람만을 계속 사랑하는 사태도 일어나는 법이다. ‘결코 바꾸지 않으면서도 늘 바꾸기(Never changing, Always changing).’ 어쩌면 인생의 장기 캠페인을 기획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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