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역량 모으고 투자 확대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도 고려해야

[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걷어내면서 장기 도약을 위한 '비단 길'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0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이 기대되는 속에서도 도시바 반도체 부문이 매물로 나오면서 한 차례 격랑이 예고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등 SK그룹 경영진의 전략적 행보는 도시바 지분 인수와 관련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 중 하나를 얻어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도시바 파산을 제외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SK하이닉스가 과감하게 인수하는 것이며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중국 업체가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아니지만 3조 원을 투자해 15% 정도의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 점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평가다.

중국, 대만 등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배제하는 데 성공하고 웨스턴 디지털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인수하는 걸 방지하는 성과를 거둔 것만 해도 그렇다. 또한 현재 11% 수준에 그치고 있는 낸드(NAND) 플래시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고속 성장이 예상되는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분야에서 기술력을 강화해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게다가 SK하이닉스의 가용 가능한 현금성 자산이 3조~4조 원 수준이라는 분석을 감안할 때 무리한 차입을 통하지 않고서 자금을 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만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배가 고픈 심정에서 반도체 산업에 역량을 집중해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확보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3월 초 칼럼에서도 제기한 바와 같이 기존 반도체 업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는 사안들이 너무도 많아 일순의 만족과 방심마저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반도체 칩의 수요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이 얼마든지 기존의 반도체 업계 강자들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난해부터 강력하게 일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모멘텀은 IT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을 필두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 데이터,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형국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인 엔비디아의 급성장만 해도 그렇다. 엔비디아는 기존 개인용 컴퓨터(PC)를 고속의 게임기기로 전환해주는 그래픽 처리장치(GPU-Graphics Processing Units)라 불리는 칩을 개발했는데, 그 성장세가 무섭게 나타나면서 향후 반도체 업계 최고 강자 중의 하나인 인텔의 입지마저 흔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십 개의 스타트업들이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이를 운용하는 주문형 반도체(ASIC) 칩을 개발하고, 구글 역시 `TPU'라는 언어인식용 ASIC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인텔은 이들에 대응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CPU 프로세서 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유력 업체 인수합병(M&A)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2015년에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s)라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회사인 알테라를 167억 달러에 인수하고, 인공지능 칩을 개발하는 너바나를 4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IBM과 같은 IT분야 전통의 강자는 오픈 플랫폼을 통한 반도체 칩 개발에 나서고, 삼성전자 역시 세계적인 전장 기업인 하먼 등의 인수를 통해 자동차 전장 사업에 뛰어드는 한편 사물인터넷 반도체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에는 비켜갔지만 중국 정부는 향후 20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반도체 굴기'를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반도체 산업 주도권 싸움은 향후 국가 경제와 기업의 판도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되는 만큼 정부까지 나서며 파워게임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SK그룹은 이제 반도체 사업을 그룹의 캐시카우 정도로 치부하던 것을 넘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유력한 성장 분야로 설정해 그룹의 역량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SK하이닉스를 그룹의 손자회사 정도로 둘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 등을 통해 그 위치를 격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여러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룹의 역량을 모아가고 투자 여력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다. SK그룹 및 SK하이닉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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