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12)...美 광고 '두려움 없는 소녀'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 15대 회장] 프랑스 현지 시간으로 6월 24일 저녁, 2017년 칸 라이언즈 창의성 축제(칸 국제광고제)가 폐막되었다.

세계 3대 국제광고제 중에서도 가장 저명한 광고제에 전 세계 광고인들의 관심이 쏠렸으리라. 수많은 광고 중에서 통합 부문의 그랑프리를 차지한 미국 부스트 모바일(Boost Mobile)의 ‘목소리를 높여요(Boost Your Voice)’ 편이 특히 주목을 받았으리라.

하지만 필자는 티타늄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미국 SSGA(State Street Global Advisors)의 ‘두려움 없는 소녀’에 더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우리나라 경영자들도 만사 제쳐놓고 그녀를 꼭 만나 보았으면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부터 적극적 여성 고용 조치를 시행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대기업 중에서 여성 고용율이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이 낮은 기업에게 여성의 비율을 더 높이라고 권고하는 정책이다. 1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은 높기만 하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활동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결혼과 출산 및 육아기에 해당하는 30대를 전후해서 하락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여성의 노동력이나 능력을 뚜렷한 근거 없이 평가 절하하면서 여성을 차별한 경영자도 많았으리라.

 

▲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세계적인 투자자문 회사 SSGA의 옥외광고 ‘두려움 없는 소녀(Fearless Girl)’ 편(2017)을 보자. 국내 일부 언론에서 이 조각상의 제목을 ‘용감한 소녀’라고 번역해 소개했는데 그렇게 하면 광고 창작 의도를 약화시켜버린다. 반드시 ‘두려움 없는 소녀’로 번역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선봉에 섰던 잔 다르크나 유관순 열사가 ‘용감했었을까’ ‘두려움이 없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이치는 자명해질 터. 두려움 없는 행동은 용감한 행동보다 더 치열한 정신세계가 아닐까? 이 옥외광고에서는 성 다양성(gender diversity)을 이야기하며 유리천장의 문제점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용감하기보다 두려움 없는 정신을 환기하고 있는 셈이다.

영상에서는 조각가 크리스틴 비스발(Kristen Visbal)이 소녀상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옥외 조형물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리더십이 있는 여성이 있는 회사는 없는 회사보다 성과가 뛰어나다” “이번 세계 여성의 날에,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위해 여성 지도력의 상징을 만들었다”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 곳에 그녀를 데려다 주자” “그녀는 다릅니다”

이 소녀상의 키는 130센티미터(㎝)다. 월가의 명물 ‘돌진하는 황소상’과 맞서 양손을 허리에 대고 당당하게 위를 쳐다보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다. 이 광고는 최종 발표에 앞선 부문별 수상작 발표에서도 대중적 효과를 측정하는 PR 부문,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편견을 깬 캠페인에 수여하는 글라스(Glass) 부문, 그리고 가장 인상깊은 옥외 광고 부문 등 모두 3개 부문에서 최고 영예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옥외광고가 “무척 간단하지만 캠페인 본연의 메시지를 즉각 전 세계에 알렸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영감을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했다”면서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2017년 1월,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A: State Street Global Advisors)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에 소녀상을 설치했다. SSGA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여성 임원이 전체의 25% 이하라는 현실을 개탄하며, 금융계에서부터 남성 중심의 환경을 개선하고 성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소녀상을 제작했다. 월가의 명물 ‘돌진하는 황소상’과 마주보는 자리에 설치된 이 소녀상은 곧 황소상의 인기를 추월해버렸다. 이 소녀상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넘쳐나 인스타그램에 인증 샷 '수만 건'이 올라왔다. 당초에 4주간만 설치한 예정이었지만 소셜미디어에 소녀상의 영구 보존을 청원하는 글이 넘쳐나 2018년 2월까지 계속 두기로 했다.

유리천장이란 말은 1979년에 다국적 정보기술업체 여직원들의 수다에서 처음 등장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1986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유리천장 기사를 내보내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2016년에 우리나라는 OECD 29개국 중 29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스마트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은 물론 남성보다 능력이 뛰어난 ‘알파걸’이 늘고 있다지만 ‘알파우먼’은 매우 적다. 알파걸이 ‘알파우먼’으로 성장할 사회문화적 환경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경영자들의 오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주위를 둘러보면 여성 임원이 늘어나면 통제력이 약화되어 조직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뜻밖에도 많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여성 장관 후보자가 늘자, 여성 장관이 뭐 그리 많으냐는 남성들의 야유도 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한 때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던 시대는 흘러갔다. 남성, 가정, 기업, 국가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 차별을 혁파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면 할수록 기업의 성과 역시 더더욱 확고해질 터.

젠더의 출발점은 차별에 대한 자각이다. 여성 스스로가 유리천장을 깨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 다양성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뉴욕의 소녀상이 어느 날 갑자기 광화문에 등장해서 우리를 노려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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