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17>...내친김에 이 길 따라 백두산까지 달렸으면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2017년 10월22일(일요일), 그리운 금강산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파랑길 50코스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노래다. 항상 그리움으로 일생 가보고 싶던 곳이 막상 열렸을 때는 가보지 못했다. 가보고자 했던 금강산은 다시 막혀 또다시 그리움이 되었다. 다녀온 지인들의 무용담을 전설처럼 들으며 다녀오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미술사 강의 시간에 가르치던 선생님이 겸제 정선의 금강산도를 진경산수화의 정수라며 설명할 때도 가보지 못한 자의 그리움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가 마침 금강산 전망대가 15일간 문을 연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고는 서둘러 예약을 진행하였다.

예약날짜가 22일 일요일 오후 2시여서 겸사겸사 이틀 동안 해파랑길을 걷기로 하고 21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 화진포 호수 /사진=박성기 대표

어제는 해파랑길 49코스인 거진항과 김일성별장, 그리고 화진포 둘레길을 걷고는 화진포에서 하루를 묵었다.

오늘 해파랑길 770킬로 마지막 종점 통일전망대와 잠시 이어진 금강산 전망대를 가기위해 일찍부터 서둘렀다. 통일안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12.7킬로와 금강산 전망대를 돌아봐야한다.

길을 나섰다. 미리 출입신고소에서 절차를 마치고 제진검문소로 향했다. 검문소에 차를 주차하고는 거꾸로 걸어서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 장사를 안 하는 명파리 가게들 /사진=박성기 대표

제진검문소에 차를 주차하고 다시 온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검문소를 등지고 좌측 조그만 샛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폐허가 된 명파리의 펜션과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한때는 금강산 가는 길목의 요지로 경제적 풍미를 누렸건만 거센 바람에 찢어진 가게의 비닐 천막만이 요란하게 펄럭이며 객을 맞이한다. 씁쓸하다. 빗방울도 피할 겸 행장도 추스를 겸 폐허가 된 펜션의 뒷마당을 잠시 빌렸다.

태풍 ‘란’은 빗방울을 대동하고 거센 바람으로 자꾸 내 앞길을 막는다. 힘겹게 바람과 맞서며 명파초등학교를 지나 해변으로 나아갔다. 명파해변이다. 철망에 갇힌 해변은 마름모로 보인다. 철망을 활짝 열어 제치고 들어가 맘껏 뛰 놀 날이 언제가 될 것인가.

명파해변 DMZ비치하우스앞 바다는 거친 숨소리로 무섭게 요동치고 있다. 바다는 육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하늘은 검은 구름을 품고서는 간헐적으로 빗방울을 토해내고 있다.

▲ 봉화산 숲길 /사진=박성기 대표

봉화산 숲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마차진까지 3.4킬로를 가야한다. 계단을 따라 잠시 오르자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산의 나무들은 거센 바람에 몸을 좌우로 부딪치며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바람에 이는 바다와 나무의 조화가 더욱 가을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낮은 산을 오르내리다가 비포장 산길로 접어들었다. 길 곳곳에 군사 통제구간 표시다. 마음은 바다를 달리는데 내려가지 못하고 계속 산길을 따라 간다. 길 좌우에 자리한 나무들은 바람이 일자 활처럼 몸을 숙인다. 마치 건너 나무와 밀어를 나누듯 요란하게 앞뒤 좌우로 몸을 흔든다.

▲ 술산봉수대 안내표지판 /사진=박성기 대표

바다가 보인다. 바람에 억새는 등을 뒤로 확 제쳤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숙인다. 걷는 자에게 어서 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철탑 옆을 지나 길을 잡고 한참을 가니 길이 갈린다. 해파랑길은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우측 솔선 봉수대를 들러 가기로 했다. 봉수대 방향으로 산을 올랐다. 정상을 향해 20여분을 오르니 봉수대다.

▲ 길에는 낙엽이 가득해 가을을 진하게 느꼈다. /사진=박성기 대표

봉수대 위에 올라 동해 바다를 향해 내가 여기 왔음을 알렸다. 잠시 쉬는데 금세 몸이 차가워진다. 얼른 행장을 수습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 해파랑 길을 이어갔다.

이제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아서 평지인가 싶더니 마지막 가파르게 다시 산을 오른다. 힘겹게 산에 오르니 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 마차진해변 /사진=박성기 대표

마차진에 도착했다.

군데군데 한때는 성황을 이뤘을 집들이 거의 폐허가 되었다. 예전의 경제적으로 번창했던 영화는 간데없고 젓갈을 파는 집 두어 채가 보일뿐이다. 아마도 '금강산 관광'이 멈춰선 영향도 있겠고 새로 난 도로 때문에 모든 차량이 지나가지 않아서일 것이다.

▲ 제진검문소 /사진=박성기 대표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들어가는 절차를 마쳐야 사람도 차도 제진검문소를 통과해 통일전망대를 갈 수가 있다. 미리 절차를 진행해놨기에 바로 출입사무소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차를 세워둔 제진검문소로 갔다.

▲ 통일전망대 /사진=박성기 대표

통일전망대다.

금강산전망대로 가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아 통일전망대를 먼저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멀리 구선봉과 해금강이 눈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파도는 바람을 이고 쫒기 듯 육지로 내달린다. 짓쳐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다.

▲ 구선봉과 북한해변. 우측 끝으로 이어지면 해금강이다. 파도가 육지를 집어삼킬 듯 거세다. /사진=박성기 대표

시간이 되어 금강산전망대를 향했다.

군인의 안내와 브리핑을 받으며 눈앞의 펼쳐진 풍경에 마음이 울먹울먹 해진다. 군사지역이라 촬영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 10월 27일에 다시 가서 찍은 사진이다. 해파랑길은 멀리 구선봉과 해금강을 지나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사진=박성기 대표

멀리 국지봉과 삼일포가 눈에 잡힐 듯 보이고 낙타 등을 한 구선봉이 바로 눈앞에 있다. 구선봉 아래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가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말들이 무리를 지어 바다로 뛰어들 것 같은 말무리 반도며, 금강산을 바다로 옮겨놨다는 해금강이 그림처럼 가깝다.

금강산 들어가는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나란히 보인다. 구서통문을 지나는 도로에 사람가득 싣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버스를 볼 날을 기다려본다.

▲ 27일 다시 금강산 전망대를 찾았다. 금강산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은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금강산 풍경이다. /사진=박성기 대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좌측으로는 북한군 전망대가 있는 앵카고지 너머로 금강산이 있으나 안개에 가려 흐리게 보일 뿐이다. 안내하는 군 장교의 설명으로는 맑을 때는 눈앞에 있는 듯 보인다 하나 그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 뒤 다시 예약을 했으니 그때는 볼 수 있으려니 마음을 달래고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길을 마쳤다.

▲ 770킬로를 달려온 해파랑길이 여기에서 멈췄다. 길은 이어 해금강을 넘어 두만강까지 이어져야 한다. /사진=박성기 대표

770킬로를 달려온 해파랑 길은 계속 북으로 달려야 한다. 두만강까지 가서 남과 북을 잇는 동해안 해파랑 길을 완성해야한다. 언제고 길이 이어지면 이 길을 따라 계속 걷고 싶다. 개마고원도 걷고 백두산도 걷고 싶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험악한 말들은 이제 듣고 싶지 않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하가 망가지는 그런 비극은 절대 맞이하면 안 된다.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게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복이라 여긴 정지용 선생의 글로 마지막을 갈음한다.

“한 해 여름 팔월 하순 다가서 금강산에 간 적이 있었으니 남은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 한 번 보고지고가 원이라고 이른 이도 있었거니 나는 무슨 복으로 고려에 나서 금강을 두 차례나 보게 되었던가.”
(정지용의 「금강산기(金剛山記)」내금강 소묘(內金剛 素描)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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