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19>...단풍 관광객들, 지역경제에도 활력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2017년 11월3일 금요일, 이번엔 단풍으로 물든 백양사를 찾았다.

매년 이맘때면 강원도부터 남도 땅까지 단풍을 따라 다니곤 한다. 같은 장소, 같은 나무에서 보는 단풍도 해마다 다르게 보이니 색의 조화가 신비하고 새롭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 때면 전국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단풍 따라 몰려 든다. 이날에도 그랬다. 단풍은 우리나라 최고의 가을 관광상품이다. 그리고 관광객이 많다는 것은 지역경제의 주름을 펴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단풍길이 좀 막히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흐뭇하다.

▲ 백양사 입구 /사진=박성기 대표

이번 단풍 길은 전부터 기다리던 터라 아침이 눈도 뜨기 전인 이른 새벽 서둘러 출발했다. 살짝 이슬비처럼 내려앉는 빗방울을 보며 오늘의 일기가 불순할 것을 걱정하였는데 생각만큼 심하지는 않아 보인다.

매표소를 지나 박물관에 차를 대고 채비를 갖추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첫 주말 백양사다. 10월 중순 강원도 설악산과 오대산을 지나 남으로 내려오던 단풍이 이곳 백양사에 도착했다. 붉은 단풍 사이로 물들지 않은 단풍도 더러 있다. 지금 백양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 저수지에 드리워진 단풍 /사진=박성기 대표

채비를 갖추고 천천히 완상하며 길을 나섰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는 숲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길 왼편으로 저수지다. 온 산을 물들인 단풍은 저수지에 비쳐 묘한 반영을 보인다. 하늘은 점점 구름이 올라 사방이 어둡다. 햇빛이 있었다면 더 붉고 진했을 터라 아쉽다. 저수지 위로 비스듬히 누운 나무 가지에선 가득한 단풍잎이 무게를 못 이기고 표표히 낙하한다.

▲ 쌍계루를 물들인 단풍 /사진=박성기 대표

쌍계루(雙溪樓)다. 백양사를 들어가기 위해선 이 쌍계루를 지난다. 쌍계루 앞은 계곡을 막아 호수를 만들었다. 멀리서 카메라로 호수위의 쌍계루를 잡으면 참 아름답다. 단풍과 쌍계루와 쌍계루 뒤 백학봉이 호수에 들어있으니 무엇이 실체(實體)이고 허상(虛像)인가. 신묘한 풍경이다.

쌍계루를 지나 백양사(白羊寺)에 들어선다. 백양사는 원래는 산 이름과 같은 백암사(白巖寺)였다가 정토사(淨土寺)로 개명한 뒤 다시 조선에 들어와 현재의 백양사가 되었다. 백양사의 이름에는 양에 얽힌 전설이 있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죄의 업을 다하고 천상으로 돌아간다 하고는 사라졌는데 다음날 백양사 영천굴 아래에는 흰 양이 죽어 있었다.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는 것이 백양사 이름의 유래다.

▲ 대웅전을 시위하듯 서있는 백학봉 /사진=박성기 대표

천왕문을 지나 범종각과 대웅전, 향적전, 명부전과 극락보전 진영각 등 전각을 구경하였다. 뒤의 백학봉이 시위(侍位)를 서듯 거대한 위용으로 대웅전을 감쌌다.

▲ 약사암 /사진=박성기 대표

백양사를 출발하여 본격 등산을 시작했다.

비자나무숲을 지나 삼거리다. 왼쪽으로 오르면 운문암이고 오른쪽으론 백학봉으로 바로 오르는 약사암 방향이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지그재그로 된 산길을 400여 미터 오르니 약사암(藥師庵)이다. 약사암에 이르자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암자 처마에서 비를 피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비가 멈췄다. 시야를 넓혀 먼 곳을 바라보니 비구름이 가득하다. 그러나 많이 올 비는 아니고 오락가락 하다가 오후쯤 멈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 영천굴 /사진=박성기 대표

약사암에서 백학봉 방향으로 100미터를 더 가니 백양사 전설에 등장하는 양(羊)이 죽어있다던 영천굴(靈泉窟)이다. 영천굴에 전각을 지었는데 아래층엔 약수가 있고 이층은 동굴과 연결되어 있고 동굴에 부처님을 모셨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보살님에게 양해를 얻어서 아래층 약수 앞 한쪽에서 싸온 음식을 먹으며 비를 피했다. 잠시 후 비가 그치자 영천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출발했다.

▲ 백학봉 /사진=박성기 대표

엄청 가파르다. 900미터 남짓 수직에 가까운 길을 계단에 의지하여 힘겹게 올랐다. 앞을 가리는 안개가 가득하고 몸을 날릴 듯 가끔씩 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몸을 거칠게 밀어낸다. 안개 사이로 붉은색의 단풍은 센 바람에도 꿋꿋하다. 몸은 천근이라도 된 듯 무겁다. 중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백학봉을 오른다.

1시간 남짓 오르니 651미터 백학봉(白鶴峰)이다. 백학봉 정상에 서서 안개에 가렸지만 발아래를 굽어본다. 저 아래 백양사를 가늠하며 잠시 서있으니 센바람에 몸이 춥다. 얼른 몸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했다.

▲ 능선에 펼쳐진 단풍 /사진=박성기 대표

백학봉을 넘으면서 길이 편하고 쉽다. 능선길이라 평지 길을 걷듯 가쁜 하니 가볍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산 가득히 단풍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걸 보기 위해 힘들게 여기에 오른 것이다. 능선에서 바라본 내장산 너머 첩첩한 산들이 가득하다.

능선을 따라 가니 갈림길이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백양계곡으로 해서 백양사로 내려가는 코스다. 그러나 거리가 짧아서 계속 능선을 따라 진행했다.

▲ 조릿대 /사진=박성기 대표

구암사 갈림길이 나왔다. 구암사 방향이 아닌 상왕봉을 향해 능선 길로 진행했다. 여기서부터 키작은 조릿대가 기린봉까지 가는 동안 많았다. 조릿대는 허리부위까지 키가 자라 걷는 데 지장을 주지 않고 사삭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좋다.

▲ 상왕봉 /사진=박성기 대표

기린봉을 지나 얼마간 진행하자 길이 백암산의 주봉인 741미터의 상왕봉에 도착했다. 사방이 막힘이 없고 주변 산들이 발아래 널려 있다. 멀리 우로는 내장산(內藏山)과 좌측으로 입암산(笠巖山)이 눈에  잡힐 듯 선하다.

사자봉 방향으로 길을 잡고 상왕봉(上王峰)을 출발했다. 계속 내리막이다. 500미터를 진행하니 사거리다. 여기서 오른쪽이면 순창계곡과 장성새재를 가는 길목이다. 이곳은 나중 기회가 닿으면 시도해 보기로 했다. 계속 진행해서 200미터만 더 가면 사자봉인데 시간이 많이 되고 몸이 힘들어서 바로 좌측 운문암 방향으로 내려갔다.

▲ 나무 등걸 사이로 살짝 보이는 단풍이 곱다 /사진=박성기 대표

내려오는 길목에선 아름답게 물든 단풍들이 부는 바람에 쏟아지듯 내리고 있다. 나무 등걸 뒤로 가지에 고개를 내밀 듯 살짝 보이는 단풍잎이 곱다.

2킬로 남짓 내려오니 차 한 대 다닐만한 길을 만났다. 아마도 운문암을 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길인 모양이다. 운문암을 가기 위해선 산길에 내려 좌회전을 해야한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백양사로 내려가는 방향이다.

▲ 백양사 내려가는 길 /사진=박성기 대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만한 길목엔 낙엽이 가득 쌓이고 걷는 내 발걸음에 채여 가끔 흩날리곤 한다. 길 따라 백양계곡이 계속 이어져있다. 내려가는 내내 길옆 나무에서 낙엽이 풀풀 날리며 떨어져 내린다. 시멘트 길은 푹신한 양탄자인양 낙엽으로 가득하다. 길 따라 계속 내려오니 다시 백양사다.

오전 11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내려오니 산에서 여섯 시간을 지냈다.

이번 트레킹은 1박2일 단풍트레킹으로 내려왔다. 거듭 말하지만 아름다운 단풍은 가을 관광객을 홀리는 최고의 관광상품이다. 오늘은 백양사 단풍에 흠뻑 빠졌다. 내일은 고창의 문수사 단풍과 무장읍성을 살펴보리다. 산이 깊어 날이 쉬이 어두워진다. 원점으로 내려와 행장을 수습하고 되돌아가는 길에 벌써 어둠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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