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35>...필리핀 애완동물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어떤 상사 밑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사람이 상사가 바뀌면 대단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기를 펴지 못하고 늘 죽어지내던 사람이 직장을 옮기고 나서 활력이 넘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를 바꾸고 나서 훨훨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찌어찌 해서 담임 선생님이나 지도교수가 바뀐 다음부터 공부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 학생들도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궁합이 안 맞고, 불행의 원인은 누구 때문일까?

사람 사이의 불편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윗사람의 너그러움이나 사랑이 부족해 유기동물처럼 상대방을 마음속에서 버리는 데서부터 불행이 싹트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양육 인구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서울시민 5명 중 1명이 동물과 더불어 살고 있는데, 한 해 동안 서울에서만 9000마리의 동물이 버려진다고 한다. 필리핀의 동물복지협회 광고에서 버려지는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해보자.

▲ 카라동물복지협회 TV광고 '애완동물' 편 (2014) /사진=김병희 교수
 
▲ 카라동물복지협회 신문광고 '애완동물' 편 (2014) /사진=김병희 교수

필리핀의 카라동물복지협회(CARA Welfare Philippines) 광고 ‘애완동물’ 편(2014)에서는 동물복지 문제를 생각하도록 한다. 카라(CARA)는 동물에 대한 연민과 책임(Compassion And Responsibility for Animals)의 약자다. 필리핀에는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정부 단체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00년에 동물 보호를 위한 비영리 시민단체인 카라동물복지협회가 결성되어 유기동물의 보호 활동을 전개해 왔다. 시민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카라는 유기된 동물을 대상으로 TNR(Trap 포획, Neuter 중성화 수술, Return 제자리 방사) 활동을 수행하기도 한다. 동물을 입양하려면 고양이는 1회, 개는 2회 만난 다음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카라의 자원봉사자가 신청자의 집을 방문해 동물을 키울 환경이 되어 있는지 직접 확인한 다음, 승인 절차가 끝나면 소정의 입양비를 내고 동물을 데려가면 된다.

텔레비전 광고가 시작되면 온통 진흙을 뒤집어 쓴 개가 잔뜩 움츠려있는 모습과 함께 이런 자막이 뜬다. “도슨은 죽을 수도 있는 샛강에 버려졌다” 바로 화면이 바뀌면서 “지금의 도슨”이라는 자막과 함께 건강하게 바뀐 도슨이 등장한다. 하복부를 밧줄에 묶여 초췌해진 고양이가 등장하며 “탈리는 위를 쪼이는 밧줄로 묶여 있었다”라는 자막이 뜨고, 다시 “지금의 탈리”라는 자막과 함께 주인의 사랑을 받아 통통해진 탈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화재로 인해 몸의 털이 새까맣게 타버린 개와 더불어 이런 자막이 뜬다. “트리시는 (화재로) 털을 잃게 된 후 버려졌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지금의 트리시”라는 자막과 함께 털이 무성해져 있는 트리시가 등장한다. “새 주인이 모든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조 동물을 입양하세요”라는 자막이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잔잔한 음향 효과만 배경으로 흐르는 기운데 내레이션도 없이 오직 자막만으로 카피 메시지를 전달했다.

인쇄광고에서는 애완동물이 구조되기 전후의 사진을 비교할 수 있도록 동시에 보여주었다.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이 광고에서는 “같은 개, 다른 주인(Same dog, different owner)”, “같은 고양이, 다른 주인”이라는 간명한 카피만으로,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한 눈에 느끼도록 했다. 광고회사 TBWA의 필리핀 마카티시 지사에서는 동물복지 문제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참담한 현실의 사실성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동물 모델들은 구조된 실제 사례였는데, 집을 잃은(homeless) 상태와 집을 찾은(re-homed) 상태를 비교해본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입양 전후의 상황을 실제 사진으로 본 사람들은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려고 마음먹은 잠재적 주인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광고가 나간 다음, 유기동물의 입양률이 3.7% 증가했고 기부금도 광고하기 전에 비해 6.4%나 증가했다. 더더욱 중요한 성과는 애완동물 학대 문제에 무심하던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면서 동물복지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켰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지난 10월 28일, 서울시는 마포구 상암동에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를 개장했다. 전국 최초의 반려동물 전문 공공기관이 탄생한 것. 유기동물 제로와 안락사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동물보호선언’도 발표되었다. 센터에서는 유기동물을 위한 동물병원, 동물 입양 센터, 동물보호 교육장, 동물보호 커뮤니티룸도 운영한다. 앞으로는 구조된 유기동물 중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동물이 들어오면 입원시켜 전염병 검사를 비롯한 건강 검진도 하고 인도적 수준의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건강진단을 받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유기동물들은 새로운 가족들도 만나게 될 터. 우리나라의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KARA)에서도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펫티켓 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펫티켓(Petiquette)이란 애완동물인 펫(pet)과 에티켓의 합성어다. 모두가 펫티켓을 준수함으로써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싶다.

마하트마 간디는 “동물이 받는 대우에 따라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경영 통찰력의 관점에서 이 광고들은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같은 개, 다른 주인”이라는 카피를 “같은 직원, 다른 상사(Same people, different boss)”라는 말로 바꾸면 영락없이 직장 생활의 한 장면이 설정된다. 광고 카피를 가정생활이나 학교생활의 한 장면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어떤 상사 밑에서는 늘 주눅 들어 능력발휘를 하지 못하던 사람이 다른 상사 밑에서는 펄펄 날아다니며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도 많다. 직원들의 숨은 능력을 찾아내려 하지 않고 허술한 선입견만 갖고 판단하는 상사 밑에서는 유기동물 같은 유기인(遺棄人)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똑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무녀리가 될 수도 있고 방짜(품질 좋은 놋쇠를 다시 두드려 만든 고품질 그릇)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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