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달러 지키려다 'IMF 위기' 초래한 교훈 명심해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한국이 내년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에 들어서는 또 하나의 기념비를 세운 것이니 충분히 자축할만한 일이다.

더욱 수준 높은 선진국이 되고 있다면, 이런 기념비적인 계기를 해석하는 자세도 선진화돼야 한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국민소득 1만 달러에 들어설 때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선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만 달러든 5만 달러든 이것은 모두 숫자일 뿐인데 이 숫자의 함정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5년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크게 자축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행 경제시스템으로 검색을 해 보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것은 1995년이 아니라 1994년이다. 경제성장률, 국민소득과 같은 국민계정 통계는 기준년도가 바뀌면서 과거 숫자가 변하는 일이 흔하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얼마를 넘었느냐를 따지는 것이 이렇게 허무한 얘기인 것이다.

특히, 이때의 1만 달러 국민소득은 오히려 정책당국의 발목을 강하게 붙잡아 전례 없는 국난의 한 요인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다.

대부분 국민들은 크게 유의하지 않았지만, 외환시장은 1996년부터 격렬한 외환위기 경고를 받고 있었다. 반도체 수출부진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의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인해 원화환율이 급등했다.

외환당국은 여름 이후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여름 이후에는 거의 매일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지금처럼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를 넘기던 것도 아니고 몇 백억 달러에 불과한 시절이었는데도 이 긴 시간의 환율개입을 감당했다. 그러니 다음해 한국에 외화가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원화환율 하락을 인위적으로 막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반대였다. 올라가는 환율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거덜 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된 이유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집착’으로 풀이되고 있다. 원화환율 급등을 방치했다가는 이제 막 1만 달러를 넘은 국민소득이 다시 9000 달러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했던 것이다.

‘국민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몇만 달러를 넘었다’는 소식은 경제보다도 정치적으로 더욱 큰 뉴스가 된다.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업적으로 대대적인 포장을 하지만, 그만큼 국민소득을 그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 사진=서울시청 홈페이지.


지금 한국 경제는 과거 누적된 부실을 털어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해운업종의 부실이 최근에도 주가를 급락시켰다. 한국도 선진국처럼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가계부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엄청난 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무역흑자를 이끌어온 반도체 업종에 대해서는 일부 해외기관들이 한층 풀이 꺾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외 경제여건에 하나라도 이상이 있을 경우, 3만 달러를 살짝 넘었던 국민소득이 다시 그 아래로 내려갈 소지가 가득하다.

중요한 것은. 이럴 때 정책당국이 숫자놀음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3만 달러를 지키려고 미래를 망치는 정책을 쓰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한다.

1996년 그렇게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1998년 국민소득은 6823 달러로 추락했다. (집계 당시 보도는 그렇지만 현재 한은 통계는 7989 달러로 다소 높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무너질까봐, 이미 좀비가 된 기업을 계속 끼고 가는 것이나 올려야 할 금리를 안올리는 행위 등이 모두 숫자 3만의 함정에 빠지는 짓들이다. (금리는 오히려 올릴 경우, 원화환율 하락을 초래해 국민소득을 상승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숫자놀음에 불과한 얘기다.)

30,001 달러가 29,999 달러 되는 것을 막으려다가 2만 달러도 도전받는 지경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2만8000~2만9000 달러로 후퇴하는 것이 조만간 4만, 5만 달러로 약진하는 길이 된다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언론과 식자층의 자세 일신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이른바 ‘진영대립’으로 인해, 눈에 뻔히 보이는 경제현상도 저마다 정치적 입장에서 해석을 하는 경향이 극심하다.

만약 여론이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은 외면하고 당장의 숫자에만 집착을 한다면, 정책도 거기에 묶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국가 경제 백년대계를 위해 지금 당장 감수해야 할 희생을 외면하게 되고, 부실은 자꾸만 커져 언제 무슨 일을 터뜨릴지 모를 위험한 지경을 만들고 만다.

일부 몰지각한 언론의 이런 호들갑을 정책당국이 미리 예방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우선 당국부터 과도한 자화자찬성 호들갑을 삼가는 것이다.

무작정 자신들이 잘해서 이룬 3만 달러라고 떠들기보다 이런저런 국내사정이 어떻게 작용했고 또 어떤 변수에 취약한 소득구조인지 지속적으로 국민과 시장에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근정(勤政)의 자세를 지켜준다면, 악의적 모략이 여론을 뒤흔들 여지는 없어지게 된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